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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한 두 가지 견해(IVP, 윌리엄 로더, 메건 드프린자, 웨슬리 힐, 스티븐 홈스)

 

 

일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가지 견해라면 동성애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책 전체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여기에 등장하는 4명의 견해가 두가지로 크게 나뉘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 중에 한 사람도 동성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네명의 저자를 크게 둘로 나누면 윌리엄 로더와 메건 드프란자는 성경적, 신학적으로 동성 결혼까지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며 웨슬리 힐과 스티븐 홈스의 경우에는 결혼은 출산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동성 결혼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웨슬리 힐 본인이 게이 크리스천임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성서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동성애를 느끼는 것과 이것이 동성간의 성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책의 구성은 각각의 저자가 본인의 입장을 주장하고 나머지 세 명이 각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비평을 하고 이 비평들에 대한 저자의 반론 형식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 비평의 과정에서 서로를 비난하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깍아내리지 않고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깊고 중요하다. 

 

한국 기독교는 동성애라는 주제에 대해서 매우 과격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동성애를 반대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서 겸허하게 듣고 이것에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서문(프레스턴 스프링클)

휴거나 전천년설이나 방언 등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논쟁을 벌이는 다른 문제들과는 달리 동성애는 인간 존재의 핵심을 건드린다. 동성애가 그저 쟁점이 아닌 것은 사람이 단순한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결혼, 젠더와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성경 본분이나 교리나 성경 신학적 주제의 영향을 받은 쟁점들이다. 동성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경의 맥락이 되는 고대 근동 사회와 그리스-로마 사회를 파고들어야 하며, 동성 관계에 대한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관점을 연구해야 하며, 심리학과 사회학과 생물학의 최근 연구들을 참고해야 한다. 또한 동성애는 들을 줄 알아야 하는 문제다. 실제 게이와 레즈비언과 양성애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들 소개

1) 윌리엄 로더 :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의 섹슈얼리티 전문가, 

- 동성애 관계를 긍정하는 입장

- 성경은 동성애 관계를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대 윤리에 성경을 적용할 때는 생물학, 인류학, 사회학 등 섹슈얼리티와 젠더와 관련한 다른 분야들의 학문적 성과를 고려해야 한다. 해석학적, 윤리학적 이유에서 로더는 신실하고 배타적인 동성간 관계는 신성하다고 인정한다. 

 

2) 메건 드프란자 : 성, 젠더, 섹슈얼리티에 대한 신학적 연구의 전문가

- 성경의 금지 본문은 인신매매, 경제적 착취, 젠더와 사회 계급의 이해에 얽힌 서로 다른 권력들이 지배하던 고대 성 문화의 배경에서 읽어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경 본문은 서로 합의한 배타적 동성 간 결합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3) 웨슬리 힐 : 성서학자, 신학자, 게이 그리스도인

- 동성애 관계를 긍정하지 않는 관점에서 주장, 금지 본문들을 결혼, 성, 출산에 대한 신학의 지배적인 입장(아우구스티누스)과 대비시킨다. 

 

4) 스티븐 홈스 : 조직 신학자

-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혼에 대한 견해를 기초로 동성 커플은 출산을 할 수 없기에 동성 간 관계는 성과 결혼의 신성함에서 배제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목회적인 입장에서 이혼 후에 재혼한 이성애 커플들을 기독교 지도자들이 교회 안에 받아들인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교회가 게이나 레즈비언 커플들을 목회적으로 수용할 어떤 가능성을 살펴본다. 

 

 

제1장. 동성애와 성경(윌리엄 로더)

최근 들어 점점 커밍아웃,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선언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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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two angels came to Sodom in the evening, and Lot was sitting in the gate of Sodom. When Lot saw them, he rose to meet them and bowed himself with his face to the earth and said, “My lords, rplease turn aside to your servant’s house and spend the night sand wash your feet. Then you may rise up early and go on your way.” They said, t“No; we will spend the night in the town square.” But he pressed them strongly; so they turned aside to him and entered his house. And he made them a feast and baked unleavened bread, and they ate.

But before they lay down, the men of the city, the men of Sodom, both young and old, all the people to the last man, surrounded the house. uAnd they called to Lot, “Where are the men who came to you tonight? vBring them out to us, that we wmay know them.” Lot went out to the men at the entrance, shut the door after him, and said, “I beg you, my brothers, do not act so wickedly. xBehold, I have two daughters who have not known any man. Let me bring them out to you, and do to them as you please. Only do nothing to these men, for they have come under the shelter of my roof.” But they said, “Stand back!” And they said, “This fellow ycame to sojourn, and zhe has become the judge! Now we will deal worse with you than with them.” Then they pressed hard against the man Lot, and drew near to break the door down. 10 But the men reached out their hands and brought Lot into the house with them and shut the door. 11 And they struck with ablindness the men who were at the entrance of the house, both small and great, so that they wore themselves out groping for the door. 

 

q ch. 18:22

r Heb. 13:2; [Judg. 4:18]

s See ch. 18:4

t [Luke 24:28]

u Isa. 3:9; [ch. 13:13]

v Judg. 19:22

w Rom. 1:24, 27; Jude 7

x [Judg. 19:24]

y ch. 13:12

z Ex. 2:14

a [2 Kgs. 6:18; Acts 13:11]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19:1–11.

 

 

 

1-3절) 아브라함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두 천사는 먼저 여정을 떠나 소돔을 향한다. 앞서 22절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저녁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도착했는데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했다. 이 영접하는 모습은 흡사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영접했던 것과 같다.(18:1-4) 땅에 엎드려 절하는 것은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해할 의도가 없습니다'라는 의미의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롯은 두 천사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발을 씻고 쉬어 갈 것을 청한다. 처음 두 천사는 자신들이 거리에서 밤을 새울 것이라고 말하지만 롯의 간청으로 집에 들어가게 되고 롯이 그들을 위해서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워 먹게 하였다.

 

본문에서 마침이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떤 시기에 꼭 맞게, 공교롭게, 우연히, 바로 그 때라는 의미이다. 만약에 그 때 롯이 소돔의 성문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그의 가족을 구원을 얻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룻 2:4; 요 6: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기 2:4, NKRV)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요한복음 6:4, NKRV)

 

그러면 왜 롯은 그렇게 소돔의 성문에 앉아 있었을까? 당시 성문은 장사하는 사람들과 지역의 유지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재판을 포함한 성의 모든 행정적 상업적 업무가 진행되었다. 아마도 롯은 이곳 소돔에 정착하면서 유력한 인물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도시 사람들이 롯에게 9절에서 '이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그는 소돔을 떠나는 것을 머뭇거렸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본문의 기록속에서 롯의 아내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앞서 13:12에 롯은 소돔 근처에 거주하였다가 이제는 도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롯의 두 천사들에 대한 환대와 보호는 그가 의로운 사람임을 보여준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베드로후서 2:7–8, NKRV)

  • Lot previously camped “near Sodom” (13:12), but now he lives within the city. His hospitable response to the visitors closely resembles Abraham’s in 18:1–5. The similarities indicate that Lot by nature resembles Abraham. His subsequent protection of the men further indicates his righteousness (2 Pet 2:7–8). Lot’s wife, unlike Sarah, plays no obvious role in preparing the meal for the strangers.

  •  D. A. Carson, ed., NIV Biblical Theology Study Bible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8), 53.

 

 

4-5절) 이제 천사들이 접대를 받고 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돔 성의 사람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모여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며 '오늘 밤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겠다."라고 말한다. 본문의 상관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야다'로 성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동성애의 죄악을 알리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유래한 단어가 '소도미(sodomy)'라는 표현이다. 이 sodomy라는 표현은 항문 성교, 남색, 수간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이로인해 소돔은 성적인 죄악이 가득한 도시로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앞서 롯은 이 소돔이 치안이 위험한 도시임을 알았기에 이 나그네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집으로 들인 것인데 결국 소돔의 사람들은 힘이 없는 나그네들을 포악하게 대함으로써 이 도시 전체가 심판을 받게 된다.

동성애 관련된 질문들 속에서 과연 소돔의 심판이 동성애 때문인가 아니면 나그네를 대접하지 않는 부정과 부도덕 때문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that we may know them. In Hebrew the verb “to know” (Hb. yada‘) sometimes denotes sexual intercourse (e.g., 4:1, 17, 25; 19:8; cf. Judg. 19:22). The context implies that the men of Sodom intend to have homosexual relations with the two visitors, hence the origin of the term “sodomy.” Lot’s earlier insistence (Gen. 19:3) that the visitors should not spend the night in the square indicates that he feared for their safety. By acting so wickedly against defenseless strangers, the entire community invites divine punishment.

  •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83.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베드로후서 2:7–8, NKRV)

신약 성경은 이처럼 롯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이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표현은 고대의 명예 규정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의 손님을 지켜야할 책임이 그에게 있었기에 지금 소돔 사람들이 천사들을 강제추행하려고 하자 필사적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 4–5  Here for the first time the nature of Sodom’s sin is clearly revealed. An earlier statement (13:13) was content to evaluate the Sodomites as “evil” and “sinners.” The story that is about to unfold will substantiate that statement with specific details.

  • Before the guests can retire, the house of Lot is surrounded23 by the townsmen, who want to know Lot’s guests. This situation is somewhat ironical. The Sodomites want to “know” two men whom Lot himself does not really “know.” We know that he does not know their identity or the reason for their mission to Sodom.

  • Much debate has focused on these two verses and the meaning of know. In the OT the Hebrew root ydʿ and its derivatives occur 1,058 times. Fifteen of the 948 instances of the verb refer to sexual knowledge.24 These fifteen passages include instances where the man is the subject, where the woman is the subject, and where man is both subject and object.25 While it is well known that Heb. yāḏaʿ can connote sexual knowledge, what is not as well known is that Hebrew shares this feature with other Semitic languages.26

  • What is its meaning in Gen. 19:5? Some maintain that know in this verse should not be included with the fifteen passages mentioned above. Rather, a case is made that yāḏaʿ carries here its normal meaning of “become acquainted with.”27 This viewpoint argues that the sin of the Sodomites is a violation of the rules of hospitality. Because he is only a sojourner, Lot has exceeded his privileges. Since he has no authority to monopolize the time of these visitors, the men of Sodom request the opportunity to meet and get to know these two outsiders.

  • This interpretation can only be evaluated as wild and fanciful. For when Lot responds by offering his daughters “who have never known a man” (v. 8), it becomes clear that the issue is intercourse and not friendship.28 Lot would never have made such an unusual suggestion if the request was only for a handshake and moments of chitchat.

  • Among those who agree that the issue is sexual, the question arises whether the issue is homosexual relations per se or homosexual rape. The answer depends on how one chooses to translate yāḏaʿ. For instance, compare Speiser’s “bring them out to us that we may get familiar with them” with JB’s “hand them over to us so that we may abuse them.”

  • We see at least four problems with the view that the prohibition here is only on homosexual rape. First, nowhere in the OT does the verb yāḏaʿ have the nuance of “abuse” or “violate.” Second, the OT uses unmistakable language to relate rape incidents. Thus the Shechemites “seized” and “lay with” and “humbled” Dinah (Gen. 34:2). Amnon “forced” and “lay with” his half-sister Tamar (2 Sam. 13:14). Similarly, the biblical laws about rape also use these terms: “seize,” “lie with” (Deut. 22:25–27). Third, this interpretation forces one meaning on “know” in v. 5 (i.e., “abuse”) but a different meaning on “know” three verses later (i.e., “have intercourse with”), for it is unlikely that Lot is saying: “I have two daughters who have never been abused.” Fourth, such an interpretation forces these incredible words in Lot’s mouth: “Do not rape my visitors. Here are my daughters, both virgins—rape them!” Clearly, then, the incident frowns on homosexual relations for whatever reason.29 Note that in the often-cited parallel to Gen. 19, viz., Judg. 19, the host offers both his own virgin daughter and his guest’s concubine to Gibeah’s city dwellers with the statement “and sexually mistreat them” (weʿannû ʾôṯām, v. 24). By contrast, Lot avoids using any verb that has clear-cut indications of sexual aggression. Still, the reader of this narrative cannot avoid puzzlement over Lot’s willingness to make his daughters available to the people of Sodom for their sexual pleasure, even if he acts out of a desire for hospitality for his guests. In any case, his action is unsuccessful, unheroic, and it “may even make the audience of the story relieved not to be among the daughters of Lot.”30

  •  

  • 23 Speiser (Genesis, p. 139) notes that a number of Hebrew verbs (sāḇaḇ, qāhal, kāḇēḏ) when used in the Niphal and followed by the preposition ʿal convey hostile intentions. To capture that nuance, he translates nāsabbû ʿal habbayiṯ in the later part of v. 4 as “they closed in on the house.” See Josh. 7:9 for the same construction, and Judg. 19:22 for an approximate construction (accusative instead of preposition): nāsabbû ʾeṯ habbayiṯ.

  • 24 These statistics are taken from G. J. Botterweck, “yāḏaʿ,” TDOT, 5:453.

  • 25 A man is the subject in Gen. 4:1, 17, 25; 24:16; 38:26; Judg. 19:25; 1 Sam. 1:19; 1 K. 1:4; a woman is the subject in Gen. 19:8; Num. 31:17, 18, 35; Judg. 11:39; a man is both subject and object in Gen. 19:5; Judg. 19:22. Heterosexual intercourse is in view in all but the last two references, which refer to homosexual intercourse. Interestingly, in Gen. 19:5 but not in Judg. 19:22 or anywhere else, the LXX renders yāḏaʿ with synginṓskō (“to meet, converse with”) instead of the usual ginṓskō. The LXX has here chosen a word capable of innocuous interpretation in the context. See J. A. Lee, “Equivocal and Stereotyped Renderings in the LXX,” RB 87 (1980) 109–10.

  • 26 Law 130 in the Code of Hammurapi reads: “If a seignior [a free man, perhaps a noble] bound the (betrothed) wife of a(nother) seignior, who had had no intercourse with [lit., “had not known”] a male …” (ANET, p. 171). For other references to this idiom in cuneiform literature see W. von Soden, “edû,” Akkadisches Handwörterbuch, 3 vols. (Wiesbaden: Harrassowitz, 1965–81), 1:188; and CAD, 7:28. But neither von Soden nor CAD lists many references for this use of edû/idû.

  • 27 See D. S. Bailey, Homosexuality and the Western Christian Tradition (London; Longmans, 1955), pp. 4ff. This is also the position of J. J. McNeill, The Church and the Homosexual (Kansas City, KS; Sheed, Andrews and McMeel, 1976), pp. 42–50.

  • 28 See Kidner, Genesis, pp. 136–37; P. M. Ukleja, “Homosexuality and the Old Testament,” BSac 140 (1983) 260–62; D. L. Bartlett, “A Biblical Perspective on Homosexuality,” Foundations 20 (1977) 134.

  • JB Jerusalem Bible

  • 29 R. Gordis observes that “it is difficult to see how the clear indication in both Genesis and Judges that homosexuality is worse than rape can be ignored” (“Homosexuality and the Homosexual,” in Homosexuality and Ethics, ed. E. Batchelor, Jr. [New York: Pilgrim, 1980], p. 250 n. 10). Or, I might add, that homosexual rape is as vicious as heterosexual rape.

  • 30 G. Coats, “Lot: A Foil in the Abraham Saga,” in Understanding the Word: Essays in Honour of Bernhard W. Anderson, ed. James T. Butler, et al., JSOTSup 37 (Sheffield: JSOT, 1985), p. 122. Note also this comment: “The proposition is, to put it mildly, disgusting.… Two young women, captive to their father’s will, dragged from what they may have supposed was the security of their home, in exchange for two grown men who arrive uninvited, of their own accord, at night in a strange city” (D. N. Fewell and D. M. Gunn, Gender, Power, and Promise [Nashville: Abingdon, 1993], p. 58).

  •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8–50,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33–35.

 

 

  • Bring them out to us, that we may know them: the verb know is used in 4:1, 17, 25 meaning to have sexual relations with a spouse. See 4:1 for discussion. However, the same verb is used here for homosexual relations. Translators must determine whether or not the word or phrase used in 4:1 is suitable in the present context. If homosexual relations are unknown or no term is available, translators may have to provide one. This may require a footnote to explain, for example, that the men of Sodom wanted to sleep with these men. One translation, for example, says, “We want to sleep with those two; just like men do to women we want to do to them.” Examples of translations that avoid direct expressions that may be regarded as offensive are spcl “We want to lie with them,” frcl “we want to take our pleasure with them,” brcl “We want to have relations with them.”

  • In this action the men of Sodom are not only asking to have sex with Lot’s guests; they are also violating the right of a guest to be protected by the host, an equally bad misconduct.

  •  

  • spcl Spanish common language version

  • frcl French common language version

  • brcl Brazilian Portuguese common language version

  •  William David Reyburn and Euan McG. Fry, A Handbook on Genesis, UBS Handbook Serie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98), 417.

 

6-9절) 롯은 이에 위험을 감지하고 문 밖의 무리에게 나가 문을 닫고 말한다. 소돔의 사람들을 '내 형제들아'라고 부르면서 이런 악을 행하지 말것을 간청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그들을 너희에게 이끌어 낼 것이니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고 내 집안에 들어온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돔의 사람들은 '네가 뭔제 이래라 저래라야. 너는 저리 물러나 있어. 너도 이곳에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고 하는거야? 네가 먼저 당해볼래"라고 하면서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했다.

 

롯이 자신의 두 딸을 내준 대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당대의 관습에 따르면 집 주인은 자신의 손님들을 모든 위해로부터 지켜야할 책임이 있었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그래서 지금 롯은 자신의 결혼하지 않을 딸을 내준다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이것이 블러핑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도한 요구임에 틀림없다. 당시 가장이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고 딸들은 매우 낮은 위치에 있었기에 롯의 제안은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사회속에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롯을 소돔과 고모라의 일원으로서 같은 죄인으로 보기도 한다. 좀더 롯 편에서 해석을 해보자면 롯의 딸들에게는 이미 약혼자들이 있었다. 롯의 집에 몰려든 소돔 사람들도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므로 롯이 딸들을 내놓겠다는 것은 소돔 사람들이 딸들의 남편될 사람들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함부로 못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 아닐까? 고대 근동의 법전은 한결같이 약혼한 여자를 강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즉 롯은 자신의 딸들이 이들에게 강간강하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후 이 딸들을 범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소돔은 지금 동성애를 행하는 것과 강간/윤간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롯은 이 성문 앞에 앉아있는 유지였지만 소돔 사람들은 롯을 '이 자'라고 부르면서 롯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롯은 앞서 소돔 주변에 장막을 쳤다.(13:12) 그러다 소돔에 거하게 되었고(14:12) 이후 전쟁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이를 아브라함이 구출해준다.(14:14) 이렇게 소돔 사람들은 자신들이 구출된 것이 롯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일을 잊고 네가 무엇이관대하면서 그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롯은 자신이 소돔성의 유력한 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딸들도 그곳의 남자들과 약혼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 이르자 소돔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을 외부인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롯의 타이름에 분노한 이들은 손님보다 롯을 먼저 욕보이려고 했다.

 

10-11절) 소돔의 백성들의 무리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갔던 롯이 도리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에 집 안에 있던 두 천사가 손을 내밀어 롯을 집안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고 나서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였다. 이에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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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For this reason wGod gave them up to xdishonorable passions. For their women exchanged natural relations for those that are contrary to nature; 27 and the men likewise gave up natural relations with women and were consumed with passion for one another, ymen committing shameless acts with men and receiving in themselves the due penalty for their error.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Ro 1:26–27.


26절) 앞서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 수치스러운 열정에 내어버려두셨다. 이로 말미암아 여인들이 순리대로 행하지 않고 이치를 거스려 행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말하는 순리는 바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원래 처음 창조하셨을때 피조물들의 행동 원리들이 있는데 이것을 거스렸다는 것이다.
- Paul again follows OT and Jewish tradition in singling out homosexual relations as an especially clear indication of human sinfulness (see especially Gen 19:1–28; Lev 18:22; 20:13; Deut 23:17–18; in the Apocrypha, see The Wisdom of Solomon 14:24–31; in the OT pseudepigrapha, see Sibylline Oracles 3.594–600). unnatural ones. Could also be translated “those that are against nature,” where “nature” refers to the created world as God intends it to be (see also “abandoned natural relations” in v. 27). In making humans beings male and female (Gen 1:27; 5:2; cf. Gen 2:24), God manifests his intention for human sexual relations.

Douglas J. Moo, “The Letters and Revelation,” in NIV Zondervan Study Bible: Built on the Truth of Scripture and Centered on the Gospel Message, ed. D. A. Cars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5), 2293.

594 the Eternal, and after him their parents: and more than any 595 men they are mindful of the purity of marriage. 596 Nor do they hold unholy intercourse with boys, 597 as do the Phoenicians, Egyptians, and Latins, 598 and spacious Hellas, and many nations of other men, 599 Persians and Galatians and all Asia, transgressing 600 the holy law of the immortal God which he ordained.
Sibylline Oracles 3.594–600
Robert Henry Charles, ed., Pseudepigrapha of the Old Testament, vol. 2 (Oxford: Clarendon Press, 1913), 389.

본문에서 말하는 부끄러운 욕심은 일반적으로 성적인 욕망을 말하는데 이는 남자와 여자로 더불어 행하는 옳지 않은 관계를 포함한다.
본문에서는 순리와 역리를 대조해서 사용한다. 순리는 '피시스, physis'로 자연, 기원이라는 의미이고 역리는 '파라피시스'로 자연에 반대되는의 의미를 가진다. 바울은 이 본문에서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에 의도된 원리에 반대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27절) 남자들도 마찬가지로 순리대로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을 포기하고 서로 음욕을 불태웠다. 이렇게 남자가 남자와 행하는 부끄러운 행동은 그들의 잘못에 대한 벌을 그들 자신에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순리를 거스리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그것을 계속해서 알아가고 따라가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원래의 기준, 진리는 하나이므로 이것을 바르게 아는 것이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역리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불일듯 하매, Consumed or inflamed라는 표현은 매우 강력한 표현으로 파괴적인 내적 욕구를 나타낸다.
- Consumed (or “inflamed”) gives a strong image of a powerful but destructive inward desir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159.

죄에 대한 보응은 필연적인 모든 결과와 함께 죄 그 자체이다.
- The penalty for sin is sin itself with all its inevitable consequences. Because people failed to glorify God and give him thanks, God gave them over “to sexual impurity” (v. 24). Because they exchanged the glory of God for a lie, he gave them over to the “passions that bring dishonor” (v. 26).29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82.

성적인 충동자체는 유익하고 선하다. 이것은 즐거움과 후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동성을 향한 방향이 될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버리게 되고 저급한 열정이 된다.
- The sexual drive itself is wholesome and good. It is God’s way of providing both pleasure and progeny. When directed toward a person of the same sex, it abandons its God-given purpose and becomes a degrading passion.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83.

모든 죄에 대해서, 특별히 동성애와 관련된 죄에 대해서는 뉴턴 운동의 제 3법칙이 정확하게 작용한다. 이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 힘을 가하면 이 힘의 반작용으로 물체가 움직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실패, 죄를 짓게 되면 반드시 이 결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동성애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관계를 깨뜨리는 것으로 이는 반드시 파괴적인 보응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바클레이는 로마의 15명의 황제중 14명이 동성애자였다라고 증언한다.
- Barclay notes that “fourteen out of the first fifteen Roman Emperors were homosexuals.”31
- W. Barclay, The Letter to the Romans (Edinburgh: St. Andrews, 1957), 32. A. M. Hunter quotes Suetonius’s remark that Julius Caesar was “every woman’s man and every man’s woman” (The Epistle to the Romans, TBC [London: SCM, 1955], 33). Cf. Plato’s Symposium and Plutarch’s Lycurgus on homosexuality in ancient times.

Robert H. Mounce, Romans, vol. 27,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82.

많은 이들이 이 동성애의 문제를 문화의 문제로 축소시키려고 하고 있다. 당시 헬라문화에서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 도리어 힘의 상징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동성애가 아니라 소아성애의 문제로 축소키기기도 한다. 하지만 본문은 분명하게 이것이 특정한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관계된 문제임을 밝히고 있다.
- Now God’s judicial punishment is to give them over to homosexual practices, as women exchanged natural relations for unnatural ones.* The key term here and in the debate today is nature (Greek physis). Paul uses both the adjective natural and the noun unnatural ones to emphasize that homosexual practices are against God’s created order. The term itself was used in the Old Testament and Jewish world to speak of the created order. By the first century it was seen as a divinely given power that controlled the way things are supposed to be (e.g., Philo and Josephus; see Harder 1976:658–59; De Young 1988:429–41). So Paul is saying not just that this is not the natural way of having sexual relations but that this is against what God intended in creation (see France 1999:249).
It is common today to challenge this interpretation. Some scholars argue that natural should be understood as it is used in the Hellenistic world as a reference to what is the custom from the culture or natural tendencies of the individual (pointing to passages in Paul where physis does not refer to divine intentionality: Rom 2:14; 11:21, 24; Gal 2:15; 4:8; Eph 2:3). In this sense Paul would be saying that homosexuality is wrong only when the culture prohibits it or when the individual does not have that sexual proclivity (so Scroggs 1983:116–28; Mollenkott and Scanzoni 1978:61–66). Since the Greek culture strongly embraced homosexual practices, Paul would only be prohibiting it in these restricted areas. But this would only be true if Paul were writing from a Hellenistic perspective and not a Jewish one. The entire tone of this passage is Jewish, and in verse 27 Paul condemns homosexual practices entirely, evidencing a strong Jewish tone. Natural here refers not to what is natural in the culture but to God’s created order. The Old Testament contains many condemnations of homosexual practices (Gen 19:5, 8; Lev 18:22; 20:13; Deut 23:17–18; Judg 19:22–24; 1 Kings 14:24; 15:12; 2 Kings 23:7; Is 1:9; 3:9; Lam 4:6), and these are continued in intertestamental writings (Wisdom of Solomon 14:26; 2 Enoch 10:1–5; 34:1–3; Sibylline Oracles 3:184–86, 596–600; Testament of Levi 17:11; Testament of Naphtali 3:4–5; Philo On the Life of Abraham 135–37) and the New Testament (1 Cor 6:9; 1 Tim 1:10; Jude 7). In short, Paul is writing as a Jewish Christian and is in complete agreement with the tradition of which he is a part (see also Boughton 1992:141–53).
Paul continues this diatribe in 1:27. Here he turns from female to male homosexuality, pointing out three perversions: abandoning natural relations with women, that is, God’s intention that sex be restricted to male with female; inflamed with lust for one another, with strong language describing them as burning up with desire; and committing indecent acts with other men, stressing the shameful or dishonorable nature of what they have done. Again, it is common for revisionist writers today to reinterpret this. Some (e.g., Scroggs 1983:122) say Paul condemns only pederasty, i.e., men having sex with boys. But De Young (2000:158–59) argues strongly that 1:26–27 is far more general since Paul has men with men (not boys) in verse 27, includes lesbianism (there is no evidence for female pederasty then), and discusses the natural order, all of which center on adult relationships. In other words, all types of homosexual relationships are included. Countryman (1988:109–17) believes the issue is not morality but purity. So they are not sinful but only unclean in a Jewish setting. But this is impossible, for the entire context of 1:18–32, let alone the context of 1:18–3:8, centers on the depravity of humanity. There is no mention of purity issues here, only sin. France (1999:249–51) concludes that Paul unambiguously follows biblical precedent and teaches that “homosexuality … runs counter to the way God has designed human sexuality.” In short, we must say with Hurtado (1996:13–19) that the issue is one of biblical authority. Even when the command runs counter to the current cultural norm, the true Christian must obey God’s command rather than the demands of political correctness.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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