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Now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aJonah the son of Amittai, saying, “Arise, go to bNineveh, that cgreat city, and call out against it, dfor their evil1 has come up before me.” But Jonah erose to flee to fTarshis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He went down to gJoppa and found a ship going to fTarshish. So he paid the fare and went down into it, to go with them to fTarshish, haway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But ithe Lord hurled a great wind upon the sea, and there was a mighty tempest on the sea, so that the ship threatened jto break up. Then the mariners were afraid, and keach cried out to his god. And lthey hurled the cargo that was in the ship into the sea to lighten it for them. But Jonah had gone down into the inner part of the ship and had lain down and was fast asleep. So the captain came and said to him, “What do you mean, you sleeper? Arise, kcall out to your god! mPerhaps the god will give a thought to us, that we may not perish.”

a 2 Kgs. 14:25

b Gen. 10:11, 12; 2 Kgs. 19:36; Nah. 1:1; Zeph. 2:13; Matt. 12:41; Luke 11:30, 32

c ch. 3:3; 4:11

d Rev. 18:5

1 The same Hebrew word can mean evil or disaster, depending on the context; so throughout Jonah

e ch. 4:2

f See 1 Kgs. 10:22

g See Josh. 19:46

f See 1 Kgs. 10:22

f See 1 Kgs. 10:22

h Gen. 4:16; [Ps. 139:9, 10]

i [Ps. 107:25]

j 1 Kgs. 22:48; Ps. 48:7

k [Ps. 107:28]

l [Acts 27:18, 19, 38]

k [See ver. 5 above]

m [ch. 3:9]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욘 1:1–6.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욘 1:1–6.

 

요나서 자체에서 볼 때. 요나는 열렬한 민족주의 자이며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방을 대적하는 사람 그리고 적어도 반( 反 ) 앗수르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요나서는 또한 요나는 헌신되었고. 훈련되었으며. 강한 의지를 가진 선지자였고 모든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그렇듯이 시인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조차 까다롭고 완강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암시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요나는 스블론 지파 가드헤벨 출신으로 여로보암 2세가 아람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이 전쟁으로 인해 북 이스라엘의 영토가 확장될 것을 예언하였다.(왕하 14:25) 

 

 

1-3절)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신 말씀은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악독이 여호와 앞에 상달되었음을 외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욥바로 내려가서 다시스를 향하는 배를 탔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선지서의 시작을 알리는 형식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선포해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주시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요나서에서 7번 사용된다. 어떤 방식으로 말씀하셨는지, 무서운 폭풍과 지진을 통해서 혹은 아주 작고 은밀한 목소리로 였는지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요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 부인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부터 온 것인지 알고 있었다. 

여호와의 말씀, 명령은 분명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쳐라’라고 말씀하신다.  2절 한 문장안에 '일어나라, 가라, 외치라’라는 세개의 명령문이 등장한다. 이는 니느웨가 당한 상황이 얼마나 긴박한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요나의 이름의 뜻은 ‘작은 비둘기’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요나는 이스라엘에서 어리석고 지각없음의 상징인 비둘기(호 7:11)였다.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인데 아밋대라는 의미는 신실함이라는 뜻으로 ‘나의 신실함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진리의 아들 비둘기’가 된다.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는 노아에게 홍수가 끝났음을 알리는 평화의 상징인 감람나무 가지를 물어다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심판의 위기에 처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비둘기)를 통해서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구원의 도구가 되어야할 요나(비둘기)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니느웨가 아니라 저 멀리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하고 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에서 북동쪽으로 800km 떨어진 티그리스 강 동쪽에 위치한 앗수르의 도시였다. 니느웨는 주전 4500년경에 설립된 메소포다미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도시로 성경에 의하면 위대한 사냥꾼 니므롯에 의해서 창시되었다. 요나서에서 니느웨를 지속적으로 큰 성읍이라고 말한다.(3:3, 4:11) 요나서에서는 이 큰이라는 표현, ‘가돌’이라는 히브리어가 14번이나 사용된다. 또한 니느웨를 표현하면서 그들의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라아’라는 표현으로 요나서에서 9번이나 사용되는데 이는 약을 의미할 수도 있고, 재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니느웨 사람들은 악했고 그래서 곧 재앙을 맞게 될 것이다. 

2절에서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다라는 표현은 노아의 홍수 때 하늘에 닿은 인류의 죄와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께 닿으려는 인류의 죄를 연상케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말하는 것일까? 학자들에 의하면 앗수르는 고대 근동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제국으로 앗술바니발은 상습적으로 포로들의 입술과 손목을 잘랐고 디글랏블레셀은 살아있는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희생자들의 목을 잘라 산더미처럼 전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른 민족에 대한 폭력적인 만행일 수도 있고 니느웨 공동체 안에서 서로에게 행한 개인적인 범죄를 뜻할 수도 있다. 

1:2 Nineveh sat on the east bank of the Tigris River about 220 miles (354 km) north of present-day Baghdad and over 500 miles (805 km) northeast of Israel. Great (Hb. gadol) is used 14 times in Jonah. Nineveh was an important (“great”) city (see 3:3). evil. As the ESV footnote indicates, the same Hebrew term (Hb. ra‘ah; used 9 times in Jonah [see chart]) can mean “evil” or “disaster.” The Ninevites were evil, and they were in line for disaster.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7.

 

3절에서 요나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간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한 이유는 2절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말씀,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는, 그들의 악독함을 알리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스는 니느웨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위치한 지중해 서부의 먼 도시로 직선 거리가 3800km로 니느웨보다 거의 4배이상 먼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곳은 육로로 갈 수가 없어서 배를 타고 가기 위해서 욥바로 내려갔고 배 삯을 주고 그 배에 오른 것이다. 

요나는 왜 다시스로 애써서 가려고 했을까? 그냥 이스라엘에 머물면서 니느웨로 가지 앟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요나는 계시의 땅인 이스라엘을 벗어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벗어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재이시지만 요나는 하나님을 지역 신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지역을 멀리 떠나면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치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거하는 것과 반대되는 표현이다.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고 명령하셨는데 지금 요나는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욥바로 내려갔다.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서 욥바로 내려갔다. 이후 5절에서도 배 밑층으로 내려갔다. 2:6에도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창 37:35의 표현이 말하는 바와 같이 죽음을 향해 갔다라것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내려가는 것은 죽음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1:3 To Tarshish is repeated three times in this verse to underscore that Jonah is not going to Nineveh. Tarshish, an unknown locale associated with distant coastlands, was somewhere in the western Mediterranean—the opposite direction from Nineve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is repeated at the end of this verse to underscore Jonah’s purpose in going to Tarshish. Went down (see also v. 5; 2:6; the same verb is used for went on board) is also a euphemism for death (e.g., Gen. 37:35). The suggestion is that each step away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is one step closer to “going down” to death (see notes on Jonah 1:4–5; 2:6).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7.

 

이 구절을 교차대구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So Jonah rose (그래서 요나가 일어났다)

    to flee to Tarshish from before Yahweh (여호와의 목전에서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하여)

        He went down to Joppa (그는 용바로 내려갔다)

            he found a ship (그는 배를 발견했다)

                about to leave for Tarshish (다시스로 곧 떠나는 배였다)

            he paid the fare (그는 뱃삯을 지불했다).  

        and he went into it (그는 배로 들어갔다)

    to go with them to Tarshish from before Yahweh. (여호와의 목전에서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지금 욥바로 내려가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올라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마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속에 있는 것처럼 욥바 항구에 도착하자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었고, 요나에게는 배삯을 지불할 돈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 위해서 배에 올랐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없었다. 

 

4-6절) 이제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는 요나로 인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바다에 내리심으로 큰 폭풍이 일어나서 거의 배가 부서지게 되었다. 이에 사공등이 두려워하여 각기 자신들의 신을 부르고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의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다.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선장에 요나에게 가서 그를 깨우며 지금 배가 파선하게 되었는데 어찌 자고 있느냐하면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들을 생각하셔서 망하지 않게 하실것을 구하고 있다. 

 

4절에서 큰 폭풍이 일어났다. 4절에 사용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다’라는 표현이 5, 12, 15절에 반복되어 사용된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창이나 칼, 물건을 던질 때 사용되었다.(삼상 18:11, 20:33) 바람을 내리다, 던지다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다. 이는 던지다라를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내리신 것처럼 사공들은 배의 물건들을 던지고 풍랑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요나를 바다로 던진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지금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도망가고 있는데 바람과 바다, 심지어 배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There is nothing uncommon about a storm at sea, but we are informed that this storm had a special purpose. It was caused by a “great wind” that God’s hand hurled like a spear to stop the fleeing prophet in his tracks. The verb translated “sent” (ṭûl) is elsewhere used of hurling an object such as a spear (cf. vv. 5, 12, 15, “throw”; 1 Sam 18:11; 20:33; Isa 22:17; Jer 22:26–28). Persons at sea often experience feelings of isolation, but Jonah would find such feelings misleading. The eyes of the Lord were continually upon him (cf. Prov 15:3), and the sea is God’s dominion. As the psalmist wrote,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for he founded it upon the seas and established it upon the waters” (Ps 24:1–2).

The last clause of the verse is striking because of its imagery and syntax. The verb translated “threatened” (ḥāšab) means to “consider” or “plan” when it occurs with a human or divine subject (cf. 1 Sam 18:25; 2 Sam 14:13–14; Esth 8:3; 9:24; Jer 26:3; 29:11). Thus the ship is here personified.25 It was determined to break apart. The drama of the situation is heightened by the syntax, which sets off this clause parenthetically from the others. This might be better expressed by translating, “Now the ship was determined to break apart.” In contrast to the disobedient prophet, the wind, the sea, and even the ship were tuned in to the Lord’s purposes (cf. Lev 18:25). As Sasson describes, “The ship is first to realize the brutality of the storm, and its own terror at breaking up is quickly communicated to the sailors.”26 As v. 5 will explain, Jonah was the last one to respond.

25 Sasson, Jonah, 96.

26 Ibid., 105.

 Billy K. Smith and Franklin S. Page, Amos, Obadiah, Jonah, vol. 19B,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5), 229–230.

 

5절에서 이 폭풍에 대한 사공들의 반응은 3단계로 진행된다. 두려워하고 기도하고 물건을 던졌다. 사공들은 큰 바람과 폭풍에 익숙한 전문가였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하며 자신의 신께 간구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전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이는 자신들의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는 것이었다. 또한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바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 요나는 배 밑으로 내려가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깨어서 노력해야할 하나님의 사람이 모두가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애쓰는 상황가운데 배 밑으로 내려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인 잠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선장을 통해서 요나를 깨우신다. 6절에서 선장의 입을 통해서 요나의 사명을 다시금 상기시키신다. 바로 선지자의 사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망하지 않도록 죄를 경책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것인데 이를 거부하고 도망가는 요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멸망하게 된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요나보다 이방인 선장이 더욱 뛰어난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요나에게 너의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질책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니느웨의 죄악을 질책하기를 거부한 요나 자신이 지금 질책을 받고 있는 것이다. 

6절의 망하다라는 말은 이후에 14절, 3:9, 4:10에서도 반복되어 사용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요나는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간다. 이 도망가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키셔서 요나의 길을 막으신다. 니느웨의 구원을 위해서 요나가 나아가야 하는데 요나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이 싫어하는 앗수르, 니느웨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알기에 이것을 원치 않아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사용하심으로 폭풍을 일으키셔서 그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신다. 

 

 

 

 

 

 

 

 

 

 

 

 

 

 

728x90

요나서 서론

1. 저자와 제목

이 책의 제목은 주인공인 선지자 요나이다. 1장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2. 저작 연대

요나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주전 8세기이다.(왕하 14:23-28)

열왕기하 14:25 (NKRV)

25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주전 2세기의 시락서 49:10에 12선지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요나서는 주전 8세기에서 주전 3세기 말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집회서 49:10 (NCTB)

10그 밖에 열두 예언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뼈가 무덤 속에서 다시 꽃피어 나기를! 그들은 야곱의 백성을 위로하였고 굳은 희망으로 그들을 구원하였다.

Since Jonah prophesied during the reign of Jeroboam II (782–753 b.c.; see 2 Kings 14:23–28), and since Sirach 49:10 (from the 2nd century b.c.) refers to the “twelve prophets” (namely, the 12 Minor Prophets, of which Jonah is the fifth), the book of Jonah was written sometime between the middle of the eighth and the end of the third centuries. No compelling evidence leads to a more precise date.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3.

 

3. 주제 

여호와는 ‘우리’(요나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이방인 선원들과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한없는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4. 기록 목적과 배경

요나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베푸시는 한없는 긍휼을 깊이 깨닫고 그러한 하나님의 긍휼의 도구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요나는 주전 782년부터 753년까지 이스라엘(북왕국)을 다스렸던 여로보암 2세 (왕하 14:23~28) 의 통치기에 예언했다. 여로보암은 주전 814년부터 798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린 여호아하스의 손자였다. 여호아하스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은 아람 족속의 압제를 받았다(왕하 13:3), 그러나 여호와의 크신 긍흘로 인해(왕하 13:4, 23) 이스라엘은 멸망을 면하고 이 압제에서 구원받았다(왕하 13:5), 구원은 “구원자"(왕하 13:5) 를 통해 왔는데 그는 아마도 앗수르의 왕 아닷 니라리 3세 (주전 810~783년) 였을 것이다. 여로보암의 아버지 요아스(주전 798~782년)는 아람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 자유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의 국경을 확장하기 시작했고 여호아하스 시대에 빼앗긴 고을들을 되찾았다(왕하 13:25), 여로보암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지만(왕하 14: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보다 이스라엘 영토를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의 국경에 맞먹을 만큼 크게 확장했다(왕하 14:25)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빗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왕하 14:25)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처럼 요나는 하나님의 회복의 긍흘이 패역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여로보암에 의한 영토 확장은 앗수르의 국력 약화로 인해 더 용이해졌다. 앗수르는 아람 및 우라르투와 충돌했다. 또한 앗수르 제국 안에는 (지역 총독들이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다스린 곳에서는) 기근이 만연했고 반란도 수없이 일어났다. 그 후 아슈르-단 3세의 통치기 (주전 771~754

년)에는 상서로운 일식이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회개 촉구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비로소 디글핫빌레셀 3세 (주전 745~727년)가 이 지역에서 지배권을 잡고 앗수르의 지배를 재확립하게 되었고 그의 아들 살만에셀 5세 (727~722년)는 722년 에 이스라엘 정복과 사마리아의 멸망을 가져왔다. 따라서 요나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긍훌로 인해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시기에 예언했다.

Jonah prophesied during the reign of Jeroboam II (2 Kings 14:23–28), who ruled in Israel (the northern kingdom) from 782 to 753 b.c. Jeroboam was the grandson of Jehoahaz, who ruled in Israel from 814 to 798 b.c. Because of the sins of Jehoahaz, Israel was oppressed by the Arameans (2 Kings 13:3). But because of the Lord’s great compassion (2 Kings 13:4, 23), Israel was spared destruction and delivered from this oppression (2 Kings 13:5). This deliverance came through a “savior” (2 Kings 13:5), who may have been Adad-nirari III (810–783 b.c.), king of Assyria.

Jeroboam’s father, Jehoash (798–782 b.c.), capitalized on this freedom from Aramean oppression and began to expand Israel’s boundaries, recapturing towns taken during the reign of Jehoahaz (2 Kings 13:25). Though Jeroboam “did what was evil in the sight of the Lord” (2 Kings 14:24), he nevertheless expanded Israel even farther than his father did, matching the boundaries in the days of David and Solomon (2 Kings 14:25); this was “according to the word of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ich he spoke by his servant Jonah the son of Amittai, the prophet, who was from Gath-hepher” (2 Kings 14:25). Thus Jonah witnessed firsthand the restorative compassion of God extended to his wayward people.

In God’s providence, the expansion by Jeroboam was made easier because of Assyrian weakness. The Assyrians were engaged in conflicts with the Arameans and the Urartians. There was also widespread famine, and numerous revolts within the Assyrian Empire (where regional governors ruled with a fair degree of autonomy). Then there was an auspicious eclipse of the sun during the reign of Ashur-dan III (771–754 b.c.). This convergence of events supports the plausibility of the Ninevites being so responsive to Jonah’s call to repent.

  p 1684  It was not until some years later that Tiglath-pileser (745–727 b.c.) would gain control and reestablish Assyrian dominance in the area, and his son Shalmaneser V (727–722) was the king responsible for the conquest of Israel and the destruction of Samaria in 722. Thus Jonah prophesied in an era when Assyria was not an immediate threat to Israel and when Israel enjoyed peace and prosperity because of the compassion of Go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3–1684.

 

5. 장르

요나를 역사적인 실제의 선지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우화적으로 가상의 인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요나는 열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래서 저자는 요나를 성공한 선교사가 아니라 실패한 선교사로, 반면교사를 삼아 요나와 같이 죄지 않도록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 

요나서의 기록속에는 당대의 선지자들이었던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예언자에게 빵과 고기를 제공하는 까마귀의 이야기(왕상 17:6)가 등장하는데 요나서에서도 물고기가 요나를 하나님이 명하신 목적지로 운송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재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물고기(1:17), 식물(4:6), 벌레(4:7), 동풍(4:8)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이야기를 인용하시면서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보여주신다.(마 12:40-41)

마태복음 12:40–41 (NKRV)

40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41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6. 핵심 주제

앞서 말한대로 요나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이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그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요나 뿐만 아니라 이방인 선원, 니느웨 백성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다. 요나서의 마지막은 

요나 4:11 (NKRV)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로 마무리된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이들을 아끼시는데 너는 이렇게 아끼는 마음이 있느냐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요나 너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너는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계신다. 

요나는 말라버린 식물(4:10)을 염려했지만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실패한 선교사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방인 선원들(1:14), 선장(1:6), 니느웨 왕(3:9)은 요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멸망하지 않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른 몇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지상의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통제

2) 자신의 메시지를 열방에 전달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

3) 일반적으로 죄에 대한 회개의 필요성

4) 구체적으로 자기중심성과 위선에 대한 회개의 필요성

5) 사람들이 회개하면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실 것이라는전적인확신

 

7. 문예적 특징

요나서는 문학적인 걸작이다. 줄거리는 매우 간단해서 어린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의 어떤 책에 못지않은 높은 수준의 문학적 기교를 특정으로 한다. 저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수사적으로매우 힘 있게 전달하기 위해 구성, 유머, 과장, 반어, 중의적 어구, 상극적 제유법과 같은 문학적 비유를 사용한다 이러한기교의 첫 번째 예는 책의 개요(아래를보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의 주된 범주는 풍자-인간의 악덕이나 어리석음에 대한 폭로-다. 풍자의 네 가지 요소는 요나서에서 다음과 같은 형태를 취한다. (1) 공격 상은 요나와 요나가 대변하는 것-하나님을 믿음의 공동체(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심한 편견과 자민족 중심주의 - 이다. (2) 자의 은 서사 또는 이야기다. (3) 요나의 좋지 않은 태도를 판단하는 풍자의 기준 내지 표준은 하님의 성품이며 , 하님은  자비가 민족적 경계선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자비의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4) 풍자의 어조 웃음이며 요나는 웃기는 인물-하나님에게서 도망쳤다가 물고기에게 잡히고, 그늘을 드리운 나무가 없으면 살기 보다 죽기를 더 좋아하는 유치하고 뿌루퉁한 선지자-로 나타난다.

다음 세 가지 문체적 기법은특별히 중요하다. (1) 거대한 모티프 - 상치 못할정도로 큰 모프(예, 요나에게 부여된 사명의 크기, 요나를 삼키는 물고기의 크기, 요나의 여덟 마디의 설교가 이룬 회개의 크기). (2) 편재해 이러니 (예, 요나의 선지자적 사명과 요나의 수치스러운 행동 사이의 아이러니한 괴리와 하나님의 임재에서 도망치는 일의 아이러니한 불가능성) . (3) 머-요나의 행동이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우스꽝스러움.

The book of Jonah is a literary masterpiece. While the story line is so simple that children follow it readily, the story is marked by as high a degree of literary sophistication as any book in the Hebrew Bible. The author employs structure, humor, hyperbole, irony, double entendre, and literary figures like merism to communicate his message with great rhetorical power. The first example of this sophistication is seen in the outline of the book (see below).

The main category for the book is satire—the exposure of human vice or folly. The four elements of satire take the following form in the book of Jonah: (1) the object of attack is Jonah and what he represents—a bigotry and ethnocentrism that regarded God as the exclusive property of the believing community (in the OT, the nation of Israel); (2) the satiric vehicle is narrative or story; (3) the satiric norm or standard by which Jonah’s bad attitudes are judged is the character of God, who is portrayed as a God of universal mercy, whose mercy is not limited by national boundaries; (4) the satiric tone is laughing, with Jonah emerging as a laughable figure—someone who runs away from God and is caught by a fish, and as a childish and pouting prophet who prefers death over life without his shade tree.

Three stylistic techniques are especially important. (1) The giantesque motif—the motif of the unexpectedly large (e.g., the magnitude of the task assigned to Jonah, of the fish that swallows him, and of the repentance that Jonah’s eight-word sermon accomplishes). (2) A pervasive irony (e.g., the ironic discrepancy between Jonah’s prophetic vocation and his ignominious behavior, and the ironic impossibility of fleeing from the presence of God). (3) Humor, as Jonah’s behavior is not only ignominious but also ridiculous.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1684.

 

 

 

 

위의 두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욥바에서 다시스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3800km이고, 니느웨까지의 거리는 약 900km에 달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