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만남. 성령을 따라 사는 삶
1. 부인해야할 것과 긍정해야할 것들
* 생각해볼 질문 : 건전한 육체적 욕구와 죄된 육체적 욕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자기 사랑이란, 그리스도안에 있기 전의 모습들을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존재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육체적인 욕망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의 상태, 그리스도 밖의 상태로 유혹하고, 성령의 욕망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존재답게 살도록 인도합니다.
부인해야할 것 : 육체의 욕망
쾌락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며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쾌락을 사용해야할 범위를 넘어갈 때 그것은 육체의 욕심이 되기 시작합니다.
- 성, 식욕, 수면욕
-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마음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면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버는 것, 못해서 문제지 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 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성경의 가치관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스며들어 있는 세상의 가치관과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치관을 잘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또 우리가 부인해야할 육체의 욕망중에 나쁜 습관이 있는데 이는 게으름입니다. 또한 부인해야할 정신적 습관으로는 열등의식과 남을 탓하는 버릇, 경쟁적 성향, 과거의 상처나 기억에 붙들려 지내는 것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실패한 경험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패가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숨길 일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부인하지 않으면 이러한 것들이 평생 우리를 쫓아다니며 발목을 잡습니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장성한 코끼리는 힘이 엄청나게 좋아서 6.5톤이나되는 무거운 물건을 끌어당길 수가 있다고 합니다. 왠만한 밧줄들은 다 끊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 코끼리를 어렸을때 부터 줄에 묶어 놓으면 장성해서도 그 줄을 끊지 못합니다. 몸집이 커져서 6.5톤이나 끌 수 있는 코끼리가 되었는데도 어릴 때부터 밧줄에 묶여 있었기에 그 줄을 끊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나를 지배하고 있던 이런 육체적인 욕망들, 우리의 발목을 잡아 우리로 일어서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던 것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를 묶고 있던 밧줄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긍정해야 할 것 : 성령님
이제 반대로 적극적으로 긍정해야 할 것은 바로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NKRV)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방법은 바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But I say, walk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flesh.” (갈라디아서 5:16, ESV)
ESV는 본문의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표현을 walk by the spirit라고 표현합니다. 성령과 함께 걸으라는 것입니다. 마치 이 구절은 성령님과 함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가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나이가 60, 70이 넘은 노부부가 서로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낭만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일을 부인하면서 성령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일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성령과 동행하게 됩니다.
2.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
* 생각해볼 질문 : 성령님과 함께 걷는 것은 구체적으로 당신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삶, 즉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법을 배우고 누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령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 내주하십니다.
요한복음 14:16 (NKRV)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이라고 노래하고 기도하는 것이 성령님의 내주를 경험하게 해주십시오라면 맞지만 마치 성령이 떠나계신데 우리가운데 불러오는 것으로 여긴다면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영접한 순간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두번째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13 (NKRV)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의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인도하면 결혼, 직업, 학업, 돈 버는 것과 관련해서 이런 저런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령의 인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개인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성령께서 주로 하시는 일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분이 행하시고 가르치신 내용이 바로 진리입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그 진리를 따라가다보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NKRV)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가 성령의 내주하심 가운데 살아가다보면 얼굴 표정만이 아니라 성품이 달라지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가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그사람 신앙은 좋은데 성격이 이상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상하면 신앙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면 우리의 성격도 당연히 좋아져야 합니다.
네번째로 성령은 우리에게 비전을 허락하십니다.
사도행전 2:17 (NKRV)
17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본문은 요엘서 2:28절의 인용으로 성령이 부어질 때 모든 이들에게 예언과 환상과 꿈을 주십니다. 이는 모두 비전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우리 인생을 통해서 또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까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비전이란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추구하다가 죽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만한 그 무엇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다가 죽고 싶다는 비전이 있는 사람을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향해 주시는 그런 비전을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섯째로 성령은 그런 꿈, 비전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2:13 (NKRV)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비전을 이루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섯째로 성령님은 우리 각 개인에게 다양한 은사를 허락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2:4–7 (NKRV)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께서 은사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모든 사람의 이익,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입니다. 우리 개역개정에는 7절에서 단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표현하지만 새번역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더 합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자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내주하시면 이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우리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전을 가지게 되고 비전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고 또 그런 것을 함께 이룰 수 있는 은사가 주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모두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이를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5:18 (NKRV)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사람들은 간혹 성령의 충만을 능력이나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성령님은 물질이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님과 아주 인격적으로 긴밀함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이트를 하며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충만합니다. 이처럼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이로 충만해집니다. 잠잘때도, 일어나서도 그와 그녀를 생각합니다. 그 사람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이 사랑이 더욱 성숙에 이르게 되면 두 사람이 늘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져서 그 관계를 누리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따를 때 아름다운 결과가 있는 반면에 성령을 따르지 않을 때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납니다.
그 첫번재는 성령의 근심입니다.
에베소서 4:30 (NKRV)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우리가 자꾸 딴 생각을 하고 육체의 욕망을 따른다면 인격이신 성령이 근심하십니다. 부부 관계나 부모 자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계속해서 자신이 무시되고 자신이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근심하고 슬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심각해지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9 (NKRV)
19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여기서 소멸된다는 단어는 영어로 extinguish입니다. 성령의 불이 꺼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이 없어진 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점점 줄어들어서 슬퍼하시다가 침묵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슬퍼하고 계시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소멸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위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빨리 회개하고 자신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 특별한 시간을 갖고 영적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성령님과 성경
* 생각해볼 질문 : 당신이 예수를 알기 전에 익숙하던 생각과 내면의 소리에 대해서 성령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령님을 내 마음에 모셨지만 성령께서 우리 속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는지,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몰라서 성령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20세기에 새롭게 부각된 성령님
성령은 지난 2000년 동안 계속 역사하셨지만 사람들은 성령님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다가 최근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면서 성령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운동은 지나치게 은사에 집중하여 인격이신 성령님을 어떤 에너지와 같은 비인격적인 존재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성령님은 인격이시며 우리 속에 오셔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면 성령님은 매우 슬퍼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인격적으로 일하시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로 이끌기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끄는 두가지의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성령이십니다. 첫번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그분의 가치관을 알아가지 못하면 우리 속에 준동하는 여러가지 생각과 마음이 그분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객관적인 진리를 알았다면 이제 주관적으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성령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령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초자연적인 현상은 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짓 우상도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다양한 은사를 주셨는데 예언이나 방언, 통역이나 병고침 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은사를 더 높은 차원의 은사라고 생각하고 주방에서 섬기는 것이나 손대접, 긍휼의 은사는 별볼인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성경에 나타난 성령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오해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성령을 더 깊이 알아가고 체험하려면 성경은 조금 더 깊이 묵상하고 깨닫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은 영어로 canon, 캐논, 잣대라는 의미인데 이를 기준으로 우리의 행위나 체험이 옳은지 틀린지를 가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10-10-10 훈련을 먼저 시작하십시오. 아침에 10분 성경을 묵상하고, 낮에 10분 성경을 읽고, 저녁에 10분 기도하는 훈련을 먼저 시작하십시오. 이 훈련은 아주 기초적인 출발선으로 나아가 20-20-20 훈련으로, 더 나아가 30-30-30 훈련으로 깊이를 더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암송을 하거나 좋은 설교를 듣는 것도 추천합니다.(유투브)
4.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따르는 새 생활
* 생각해볼 질문 :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산다고 할 때 당신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한가지 축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삶이라면, 다른 한가지 축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번째로 기도 중에 침묵과 묵상이 필요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대로 자기 할 말만 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가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침묵하다보면 딴 생각과 잡생각이 가득하겠지만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상상하십시오. 성경을 묵상하는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진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의 시간이 없다가 느닷없이 하나님께 어느 직장에 가야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마치 갑자기 복채 내고 ‘올해 결혼할까요 말까요?’라고 묻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평상시에 ‘하나님, 오늘 어떻게 살까요?’라고 질문하십시오.
두번째로 일상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민감하게 깨어서 그분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연인 사이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서로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함께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부들도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일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아이를 키울 때,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이들과 갈등 상황이 생길 때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죄된 욕망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 우리는 성령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모야, 오늘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갑자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면 ‘너 어떻게 알고 전화했니?’라는 반응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저의 연락이 그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동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를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 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경험이 쌓이게 되면 우리의 신앙 생활에 활력이, 생기가 생깁니다.
세번째로 성령께서 하시는 중요한 일은 우리가 예수를 닮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꾸준히 운동해서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자신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래의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것, 회복되는 것,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이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성령님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인생이 바뀌는 사람들을 그 속에 계신 성령님을 따라가기에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네번째로 성령을 따라 살 때 성령은 우리가 성령의 전에 속한 존재임을 보여주십니다.
에베소서 2:22 (NKRV)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인 교회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을 따라 살 때 성령님은 특별한 영역에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깨진 세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4:18–19 (NKRV)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님이 메시야이신 예수님께 임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밝힙니다. 가난한 자들, 포로된 자들, 눈먼 자들, 억눌린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실 때, 성령님은 끊임없이 깨진 세상을 바라보게하심으로 자기중심적인 신앙 생활을 넘어서게 하십니다. 나로부터 눈을 들어 이웃을, 세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특별히 이세상의 하나님의 통치가 부재한 상황을 안타까와하며 이를 바로잡도록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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