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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족자비안 나이트의 후속이라고 볼 수 있다. 
필드 사역을 마치고 본국의 행정사역을 맡아서 복귀한 이후에 저자가 겪게되는 수많은 시행착오(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을 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중의 일부를 직간접적으로 듣고 경험한 나로서는 이 책의 많은 내용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현재 나도 우리 단체에서 맡겨진 사역이 본부의 행정사역이어서 여러부분에서 감정을 이입하며 읽게 되었다. 리더로서 겪게 되는 고립, 나의 은사와 다른 역할들이 주어졌을때의 어려움등을 공감하였다. 또한 사역자로서의 사역과 재정적 책무 부분 또한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저자의 경험과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의 문제와 한계를 생각해보게 되고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감당할 수 있는 돌파구가 보이는 듯 하다. 또한 이 책 안에 등장하는 여러 책들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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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무한대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약자는 비인간적인 삶을 감수하다가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제대로 구조조차 받지 못하는 풍경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거의 변하지 않았다. (중략) 공권력이 국민의 보호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듯한 모습, 즉 국민의 생명이나 알권리보다는 정권의 이윤 보장을 더 중시하는 모습, 국민 중에서도 힘없는 사람들은 더욱 철저히 무시되는 모습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민주권이 보장된다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인 한국인들은 과연 삶의 주인, 즉 주권자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누린 적이  있을까? 8-15 해방이 타국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고, 곧이어 분단을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의 주인으로서 지위를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닐까? 대외적으로 충분한 주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국민들을 주인 대접 해줄 수 없는 법이다."

“우리가 얻는 해방은 한낱 주인을 바꾸어 섬기는 것이요, 형태를 달리한 노예 상황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생각하는 방향은 일본이 가르쳐준 것이요, 조직된 제도는 첨단적인 미국류의 모방이요, 운영 방식은 이민족을 통치함에 사용한 일제 방식이니 우리의 문화를 어디서 찾겠는가? 이러고도 해방된 민족이라 하겠는가?”(함석헌)

현재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일제 독립의 과정에서 친일 세력들에 대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로 인해 남북 분단이 일어났고 6.25전쟁이 발발했으며 이후 경제를 일으키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과정에서 반공이 국시가 되었다. 결국 단기간의 경제 성장의 자랑스러운 결과 이면에 어두운 단면이 지금 더욱 우리에게 크게 느껴진다. 이제는 정치 권력마저 경제 권력을 어찌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과 아울러서 민초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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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문화와 선교와 관련된 중요한 주제들을 자신이 경험한 여러 예화들과 이야기들을 통해서 풀어나간다. 영광스러운 복음을 어떤 방식으로 문화적 간극을 극복하고 전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타문화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대단히 중요한 문화와 선교에 대한 개념들을 대단히 재미있게 배우게 될 것이다. 

문화의 4층 구조 : 세계관-믿음-가치관-행동양식(로이스 콰스트)

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과 저맥락적 커뮤니케이션

문화 스트레스 : 비교적 짧은 체류기간에 경험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충격
문화 충격 : 장기 체류시 경험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충격

상징 빼앗기(symbol theft) : 이교도가 사용하던 종교적 용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가져다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사용하는 것

역동적 등가(Dynamic equivalent) :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대체하는 것

구속적 유사 : 각 민족마다 복음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민족의 고유한 이야기

혼합주의 : 기독교의 모양을 띠고 있지만 내용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선교사가 현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삶 속에서 가치와 세계관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도록 돕는 일이다.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되 여기까지 돌보지 않는다면 현지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도 겉으로만 그리스도인처럼 보일뿐 결국은 예수를 믿기 전과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다. 선교지에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경건한 리더십이란 주관하지 않고 돕는 것이다. 진정한 지도력이란 지도하는 사람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지도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허드슨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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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결코 버려야 할 것이 아닌, 또 다른 부르심의 현장이다." 





“대양을 가로질러 선교지로 간다고 해서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본국에서 선교사가 아니라면 대양을 건너 선교지로 간다고 해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허드슨 테일러)

“선교란 타문화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코드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문화적 코드에 맞추어 복음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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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으신 그리스도

그가 가장 낮아지셨네.
모든 것을 가지신 그리스도
그가 우릴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네.
의로우신 그리스도
그가 죄인처럼 조롱을 당하셨네.
모든 권리와 능력의 그리스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셨고 그의 옷마저 빼앗기셨네.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네."

책중의 농부가 부른 노래이다.
한알의 낱알이 땅에 뿌리워져 자라, 알곡이 되어 밥상에 올라와 흰 쌀밥으로 먹는이들에게 에너지, 생명을 공급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이야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설명해낸다. 

아주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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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해’, 위기의 터널을 재치와 기지로 극복하라.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김난도 교수 외)는 2016년의 전망을 MONKEY BARS라는 10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Make a ‘Plan Z’ ‘플랜 Z’, 나만의 구명보트 전략
2. Over-anxiety Syndrome 과잉근심사회, 램프증후군
3. Network of Multi-channel Interactive Media 1인 미디어 전성시대
4. Knockdown of Brands, Rise of Value for Money 브랜드의 몰락, 가성비의 약진
5. Ethics, in the Stage 연극적 개념소비
6. Year of Sustainable Culture Ecology 미래형 자급자족
7. Basic Instincts 원초적 본능
8. All’s Well That Trends Well 대충 빠르게, 있어 보이게
9. Rise of ‘Architect-Kids’ ‘아키텍키즈’, 체계적 육아법의 등장
10. Society of the Like-minded 취향 공동체


N포 세대 :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 그에 더해 ‘내 집’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5포 세대’, 그리고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세대를 ‘7포 세대’라고 부르는데 이에 더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수인 N포 세대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달관세대 :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속에 생겨난 ‘사토리족’의 한국어 버전으로 높은 실업률로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의 모습을 ‘달관’에 빗대어 달관세대 혹은 달관족이라고 부른다. 적게 벌어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만족해하며 행복감을 느끼겠다는 주관적인 성향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청년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찾은 대처방안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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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복잡성 : 우리는 조리 정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가?
- 헌신 없는 반성은 모든 행동이 마비된 것이지만, 반성 없는 헌신은 행동에 대한 광신이다. 
- “교회는 영원한 복음에 헌신한다. ... 교회는 세부적인 행동이라는 덧없는 프로그램에 헌신해서는 결코 안된다.”(윌리엄 템플)
- 현대의 복잡한 문제들(과학기술의 발전은 더욱 이것을 복잡하게 만든다)속에서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계시아래 참을성 있게 앉아서 그분이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공통된 마음을 가져다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 이러한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겉만 번지레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기독교적 지성 
- 성경의 기본 전제들을 확고히 부여잡고 있으며 성경 진리에 통달한 지성을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지성을 사용하는 것의 유익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2) 우리를 풍료롭게 한다. 3) 세상에서 우리의 증거를 강화시켜 준다. 
- 바르게 살기 원하면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바르게 생각하기 원한다면 새로워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단 마음이 새로워지면 세상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롬 12:2)
* 기독교적 지성의 여섯가지 필수적 표지(해리 블레마이어스)
1) 초자연에 대한 지향, 2) 악에 대한 인식, 3) 진리에 대한 개념, 4) 권위를 받아들임, 5) 사람에 대한 관심, 6) 성례적 경향
- 데이비드 길(하나님, 역사, 사람, 윤리, 진리, 아름다움)
- 창조, 타락, 구속, 완성 / 선한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타락했고 구속을 통해 새로운 것이 되면 이어 완전한 것이 될 것이라는 안목이 요구된다. 

하나님 중심성이 기독교 지성의 기본이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독특한 존엄성과 하나님의 심판아래있는 죄인으로서의 독특한 부패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심한 병을 앓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을 세우고 동시에 같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정적을 고문하기도 한다. 
- 성과 정치에 대한 영역에 대한 고찰

사회의 미래
- 인간에 대한 전적인 신뢰나 불신의 양극단의 상태,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4가지 선물(지성, 교과서, 교사, 학교) : 1) 생각할 수 있는 정신, 2) 우리의 사고를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주셨다. 3) 진리의 영이신 성령, 4) 우리의 사고의 배경이 되는 기독교 공동체

포스트모더니티의 부속물
- 탈근대적 사고방식은 계몽주의(과학기술로 인한 인간의 발전, 유토피아 건설)를 거부한다. 세계대전과 핵위험, 환경파괴, 민족주의와 부족주의로 인해 진보에 대한 꿈은 파괴되었다. 거대담론(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을 거부


3장. 다원주의 : 우리의 견해를 강요해야 하는가?
- 다원주의란 갖가지 인종 및 종교 집단으로 이루어진 사회로 세속화와 전쟁 직후 시행된 개방적 이민정책 때문이다.(영국의 상황)
- 강요와 자유방임

강요
- 종교재판(신앙), 미국의 금주령(행동)

자유 방임
- 유대인 학살을 방임한 독일 그리스도인들

설득 
- 성경적 하나님관은 자유방임을 배제하고, 성경적 인간관은 강요를 배제한다. 

정치제도 
- 예수님과 제자들이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1세기의 상황이 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노예제도 폐지의 예)
- 전제주의 : 강요의 형태, 무정부 상태 : 자유 방임의 형태, 민주주의 : 설득
- 이혼에 대한 주님의 태도 : 신적이상(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에 양보한 것이다.(막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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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존 스토트)

1장 변화하는 세계 :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는 필요한가?
* 복음주의적 사회 참여의 유산
영국과 미국의 경우 실제로 복음주의자들을 통해서 사회개혁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피의 개혁이 영국에서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영국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인한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윌버포스의 역할)
- 사회참여는 종교의 자식이자 복음전도의 쌍둥이 자매였다. p.25
- 찰스 피니는 복음이 사회개혁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을 방출한다는 것과 교회가 사회 개혁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동시에 부흥에 방해가 된다고 확신했다. 

* 대역전(Great Reversal)
- 20세기 초반, 1차 세계대전이후 10년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게 된 기원
1) 20세기 들면서 유럽과 미국 교회를 휩쓴 신학적 자유주의와의 싸움, 믿음의 근본적인 정당성을 옹호하느라 사회적 관심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2)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의 사회복음에 대한 반발, 대표자 월터 라우센부쉬
3) 1차 세계대전이후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악이 폭로됨으로써 환멸과 비관주의가 만연, 
-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됨
4) 전천년설의 만연
- 현재의 악한 세상에 대한 개혁의 노력은 의미가 없다는 가르침
5) 중산층의 부상
- 이들은 구원을 중시하며 '지금이 좋사오니’라고 생각하며 보수적이고 현재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해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사회적 관심의 회복
1) 칼헨리 : 크리스챠니트 투데이(현대 근본주의의 불편한 양심)
2) 1974년 스위스 로잔대회 : 온땅이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동등하게 강조 / https://ecumenism.net/docu/lcwe.htm / 복음은 뿌리이며,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둘 다 그것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p.33

교회와 정치
1) 정치라는 단어의 정의
- 정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좁은 의미에서 통치의 학문이다. 예수님의 삶은 후자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전적으로 전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2)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

사회 봉사(social service)
사회 행동(social action)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움 곤경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거함
자선 활동
정치 경제적 활동
개인과 가정을 대상으로 봉사함
사회 구조를 변혁시키려 함
자비 사역
정의를 이루려는 노력
- 특정한 교차로에서 계속 사고가 난다면 더 많은 앰뷸런스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3)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사람이 반대하는 이유
(1) 현대 교회의 정치적 강조 즉 교회가 정치문제에 몰두함으로 개인구원이나 영원한 것들에 관심을 등한시 하기 때문에,
(2) 현대 교회의 정치적 견해가 서구 부르주아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3) 현대 교회의 정치적 기여가 아마추어적이기에,
(4) 현대 교회의 정치적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인간의 유오성과 죄를 간과)
4)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책임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 그리스도인 개인과 집단, 교회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 성실한 시민으로서 선거에 참여하고 현대의 쟁점에 정통하며, 공적 토론에 참여하고 신문에 글을 쓰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법안 통과 압력을 가하거나 데모에 참여하기도 해야 한다. 반면에 교회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자제해야 한다.
- 교회는 정책이 아니라 원리에 관심을 가진다.(진실성, 신중함, 정의)
- 교회는 성경적 가치를 바르게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인 개인이 각자의 신앙의 양심과 세계관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행동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관심의 성경적 기초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도피 혹은 관여이다.(또하나는 적응이다.)
1) 하나님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살아계신 하나님은 종교의 하나님일뿐 아니라 자연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칭의의 하나님 일 뿐 아니라 또한 정의의 하나님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며, 그분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이 세상을 돌보셨기 때문에, 우리는 억압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거짓과 기만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권력의 남용에 대항하여 섬김을 위해, 이기심에 대항하여 사랑을 위해, 파괴적인 반목에 대항하여 협력을 위해, 그리고 분열과 적대감에 대항하여 화해를 위해 일하는 데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p.45
2) 인간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인간이 진화에 따라 더 나은 존재가 될것이라는 미래의 불확실한 발전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코끼리 인간 이야기)
3)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안전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으셨다.(성육신하신 주님)
4) 구원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구원을 하나님 나라와 분리시켜서는 안된다. /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과 주 예수님을 분리해서는 안된다. / 믿음과 사랑을 분리해서는 안된다.(참된 믿음은 사랑을 낳으며, 참 사랑은 섬김을 낳는다.)
5) 교회에 대한 더욱 온전한 교리
- 교회는 비회원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협동 조합이다.(윌리엄 템플) : 교회는 동호회가 아니다. 우리는 교회의 이중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거룩한 세속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마르투리아)인 동시에 종(디아코니아)으로 부름받았다. 
세상은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증거하고 섬기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고 죽어야 하는 장이다. 



2장. 복잡한 세계 : 기독교적 사고는 독특한가?
- 헌신 없는 반성은 모든 행동이 마비된 것이지만, 반성 없는 헌신은 행동에 대한 광신이다. 
- “교회는 영원한 복음에 헌신한다. ... 교회는 세부적인 행동이라는 덧없는 프로그램에 헌신해서는 결코 안된다.”(윌리엄 템플)
- 현대의 복잡한 문제들(과학기술의 발전은 더욱 이것을 복잡하게 만든다)속에서 참된 겸손은 하나님의 계시아래 참을성 있게 앉아서 그분이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공통된 마음을 가져다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 이러한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겉만 번지레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기독교적 지성 
- 성경의 기본 전제들을 확고히 부여잡고 있으며 성경 진리에 통달한 지성을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지성을 사용하는 것의 유익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2) 우리를 풍료롭게 한다. 3) 세상에서 우리의 증거를 강화시켜 준다. 
- 바르게 살기 원하면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바르게 생각하기 원한다면 새로워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단 마음이 새로워지면 세상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롬 12:2)
* 기독교적 지성의 여섯가지 필수적 표지(해리 블레마이어스)
1) 초자연에 대한 지향, 2) 악에 대한 인식, 3) 진리에 대한 개념, 4) 권위를 받아들임, 5) 사람에 대한 관심, 6) 성례적 경향
- 데이비드 길(하나님, 역사, 사람, 윤리, 진리, 아름다움)
- 창조, 타락, 구속, 완성 / 선한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타락했고 구속을 통해 새로운 것이 되면 이어 완전한 것이 될 것이라는 안목이 요구된다. 

하나님 중심성이 기독교 지성의 기본이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로서의 독특한 존엄성과 하나님의 심판아래있는 죄인으로서의 독특한 부패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 인간은 심한 병을 앓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병원을 세우고 동시에 같은 과학 기술을 이용해 정적을 고문하기도 한다. 
- 성과 정치에 대한 영역에 대한 고찰

사회의 미래
- 인간에 대한 전적인 신뢰나 불신의 양극단의 상태,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4가지 선물(지성, 성경, 성령, 기독교 공동체) : 1) 생각할 수 있는 정신, 2) 우리의 사고를 지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경과,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주셨다. 3) 진리의 영이신 성령, 4) 우리의 사고의 배경이 되는 기독교 공동체

포스트모더니티의 부속물
- 탈근대적 사고방식은 계몽주의(과학기술로 인한 인간의 발전, 유토피아 건설)를 거부한다. 세계대전과 핵위험, 환경파괴, 민족주의와 부족주의로 인해 진보에 대한 꿈은 파괴되었다. 거대담론(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을 거부


3장. 다원적 세계 :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영향력이 있는가?
- 다원주의란 갖가지 인종 및 종교 집단으로 이루어진 사회로 세속화와 전쟁 직후 시행된 개방적 이민정책 때문이다.(영국의 상황)
- 강요와 자유방임

강요
- 종교재판(신앙), 미국의 금주령(행동)

자유 방임
- 유대인 학살을 방임한 독일 그리스도인들

설득 
- 성경적 하나님관은 자유방임을 배제하고, 성경적 인간관은 강요를 배제한다. 

정치제도 
- 예수님과 제자들이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다. 1세기의 상황이 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노예제도 폐지의 예)
- 전제주의 : 강요의 형태, 무정부 상태 : 자유 방임의 형태, 민주주의 : 설득
- 이혼에 대한 주님의 태도 : 신적이상(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에 양보한 것이다.(막 10:5)



4장. 소외 : 우리는 과연 영향력이 있는가?
- 역사와 성경의 증거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쳐 왔다. 

빛과 소금
1)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거룩하게, 다르게)
2)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 사회에 스며들어야 한다.(구별되어야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3)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인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우리는 그분의 극단적 가르침을 희석시키고, 그분의 과격한 복음을 생략하여 줄여 버리는 일을 놀랄 만큼 효율적으로 해왔다. 그것은 왜 우리가... 우리 사회의 도덕에 그처럼 당혹할 정도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가를 설명해준다.”(탐 사인) 
- 밤이 왔을때 왜 어둡냐고 비난할 수 없다. 등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을 비난하기 보다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독특성을 간직해야만 한다. 

기도와 전도
-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복음이다.
- 복음이 신실하게 전파될때 방부제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문화가 변혁된다. 

증거와 항변
- “한마디 말은 전 세계보다 무겁기 때문이다.”(알렉산더 솔제니친) 

모범과 그룹들
- 그리스도인들의 소그룹은 복음의 가시적 구현이 될 수 있다. 
- 소수 집단들이 수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그들의 확신과 헌신으로 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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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마이클 호튼)

- 영적 가치 혹은 복음 전도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입각해 예술, 과학, 예능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압력은 결국 창조가 주는 선물과 복음이 주는 선물을 모두 손상하고 만다.(12)
-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확실히 ‘기독교적인’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런 중압감은 창조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학적 전제에서 출발한다. 창조를 불완전하게 보는 전제는 기독교 모든 분야에서 복음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데 흔히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1장. 기독교 세계관의 기초 : 하나님의 주권
- 하나님의 주권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므로 악은 결코 결정권이 없다고 확신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24)

* 종교개혁자들의 사례
가정생활 / 미술분야 / 음악분야 / 문학분야 / 과학분야 / 교육분야
 - 복음이 어떻게 전혀 다른 별개의 두 세계관을 만들어 낼수 있는가? (중세 미술과 바로크 미술) (호튼, 30p) / 중세의 종교 인물화 - 렘브란트의 인물화(종교개혁 시대의 세계관은 미술이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완전히 현세적인 작업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했다.)
- 종교개혁가들의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태도 : 예배 안에서 말씀을 해방하고 창조 질서를 방해하는 예술을 금하고 싶어했을 뿐이다.(32) / 루터는 “나는 지나치게 영적인 일부 사람들의 항의처럼 예술을 폐지해야 하고 복음의 주변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는 모든 에술과 특히 음윽을 예술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주신 분을 섬기는 데 사용하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다.”(33)

2장. 기독교와 문화 : 영역 주권에 대한 바른 이해
- 교회는 말씀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고 가정은 성경에서 말하는 친교뿐 아니라 양질의 여가시간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확신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으며 국가는 자신에게 맡겨진 현세적 사명을 회복함으로써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55) 

* 그리스도와 문화
1) 문화에 맞서는 그리스도 : 터툴리안, 재세례파, 퀘이커교도, 톨스토이
2) 문화에 속한 그리스도 : 
3) 문화를 초월하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려 함,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
4)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르도 : 이원론, 루터주의자
5) 문화를 변혁시키는 그리스도 : 하나님의 주권은 문화적 변혁에 큰 역할을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칼빈, 개혁주의 전통

3장. 기독교와 학문 : 일반 은혜의 가치와 한계
- 바울 사도가 공격한 대상은 철학 자체가 아니라,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 세상의 지혜가 신학을 지배하는 일반적 동향이었다.(92)
- 바울 사도는 땅의일을 하늘의 일과 혼동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자연 계시를 사용해 땅에서 하늘로 이르는 사다리를 놓은 다음, 특별 계시로 문제를 직접 다루는 단계에 돌어서자마자 사다리를 내버림으로써 합의의 발판을 마련했다. / 바울 사도는 현세적 세계관에 담긴 진리를 이해하고 활용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성경을 근거로 삼아 잘못하고 있는 생각을 비판했다.(95)
- 자신이 가진 생각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든 알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두가지 요소가 있는데,두 요소는 우리 생각을 형성하는 세상의 힘과, 우리 생각을 바로잡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우리에게 나타내는 성경의 진리다.(96)
-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은혜로운 섭리에 따라 유지하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금하신 일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인에게 금지된 현세적인 활동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다니엘과 요셉의 예, 101)
- 기독교인은 일반 은혜의 분야에 반드시 종사해야 하지만, 되찾거나 회복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부여하신 소명으로 세상을 충만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종사해야 한다.(102)

4장. 기독교와 예술1 : 기독교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가

- 보수적인 기독교인은 풍부한 다양성을 환원주의에 따라 단편화해서 성경을 교재로 이해하는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 
- 예수님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실 때도 마찬가지로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 예술가에게 주어진 일차 목적은 교육하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고 예술적 흥취를 돋우는 것이다.(118)
- 예술을 은혜의 수단과 혼동할 때, 우리는 예술과 은혜를 모두 손상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122)
- 종교개혁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나타난 특징은 기독교가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예술로 하여금 주어진 소명에 따를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함으로써 성경에 입각한 종교를 예술적 노력과 가장 상응하게 만든다는 점이다.(125)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속보다는 창조가 예술 활동에 어울리는 신학적 근거임을 인정하면서 문화에 참여하는 태도가 기독교인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135)

6장. 기독교와 과학 : 서로 가까워질 수 없을까

- 현대 문명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해 마련된 처소에 과학을 봉인하려고 애써왔다.(174)
- 카이저는 과학이 꽃피우는데 필수적인 네가지 신학적 기초가 있다고 주장한다. : 1) 세계의 이해가능성, 2) 하늘과 땅의 일체성, 3) 자연의 상대적 자율성, 4) 치유와 회복의 사역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므로, 우주에는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 따라서 양식이나 법칙을 알아내려고 탐구하는 태도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179)
-루터, 칼빈 그리고 여러 종교 개혁가들은 교회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이 절대적으로 자율적이지는 않지만 과학은 교회의 권위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권위로부터 자율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다.(182)
- 자연과 은혜는 하나님이 실제로 세계를 다스리시는 두 개의 분리된 나라, 혹은 영역이다. 자연이라는 나라는 인간의 이성과 관찰에 바탕을 둔 기술과 과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죄 용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결국 두 나라를 하나님 안에서 융화할 수 있는데, 자연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한다.(183)
- 신앙이 비합리적, 비경험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과학의 주장이 제기되면서부터 두 영역을 통합하는 작업은 지적인 방법으로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결국 칸트는 신앙이 본체계(정신계)에 속하며 과학적 탐구는 현상계와 연관된다고 주장했다.(185) / 칸트는 신앙을 본체계로 안전하게 옮겨 지적, 과학적 비평의 공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종교가 무의미 하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무시당하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 상식실재론, 증거주의

7장. 기독교와 직업 : 일과 휴식
- 우리는 자신의 일터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교회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 참석하지 못하거나 교회와 관련된 일에 자진해서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해서는 안된다.(209)
- 기독교인이 월요일 아침에 일허라 가는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회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정해 놓으신 자신의 소명에 종사하기 위함이다.(210)
- 가장 열정적인 기독교인이 결국 자기 일에 관심이 제일 적은 사람으로 드러날 경우가 대단히 많다는 인상은 사람을 고용하거나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신자와 불신자 모두의 마음에 대체로 남아 있다.(211)
- 성경적 관점은 현세적인 활동에 성실하라고 요청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휴식을 취하라고 우리에게 당부한다.(218)

8장. 기독교와 현대 세계 : 미쳐 버린 세계
- 결국 진보에 대한 급진적 생각때문에 영향력있는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는 자신의 연구 분야를 미신과 신앙의 교의에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 헤겔의 등장으로 급진적 진보사상이 더욱 구체화되었다.(243)
- 기술은 진보의 정신에 외형을 부여했고 철학자와 상인은 모두 미래를 지향하는 공통된 성향을 보였다.
- 현대성은 도시와 영향력있는 행정 중심지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248)
- 신학자와 목회자는 현대성이 제공하는 온갖 바알에 굴복해 인종차별주의, 환경착취, 노예제도, 성차별주의, 과학 기술, 권력 숭배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기독교를 사용한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인격과 활동으로 자신을 알리신 역사의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의지해야 한다.(253)

결론 :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성경의 창조 교리 : 세상 안에 있다. / 세상이 사탄이나 악한 세력에 속하는 것으로 무조건 주장하려는 모든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이라고 친히 공표하신다.(시 50:12)
* 성경의 구속 교리 : 하지만 세상의 소유는 아니다. / 영지주의자는 육신, 물질적 존재, 시간, 역사,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속을 바라보지만, 신구약 성경의 저자들은 시간, 역사, 이세상 안에서 육체와 영혼 모두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묘사한다.(262)
- 우리가 세속화되는 것은 펩 도나휴의 격려 연설이 설교를 대신하고, 예배가 시장 중심의 소비주의로 변모되고, 교회 안에서 확고한 성경적 핵심이 치유주의적 범주나 정치적 범주에 밀려나기 시작할 때다. 우리가 세속화되는 것은 실용적인 쟁점이 잘 훈련된 제자도를 대신하고, 가시적인 인기와 숫자적인 성공을 목회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다.(263)
- 승리의 직설법(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다는 선포)뒤에는 명령법(거룩하다는 사실에 모순하지 않는 태도로 생활하라는 명령)이 따른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갖는 지위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보이는 거룩함의 진보에 따라 결코 좌우되지 않지만, 참된 신자라면 누구나 이 두가지를 모두 지녀야 한다.(264)
* 창조와 구속 :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 범속한 것과 거룩한 것의 분리를 비롯해 평범한 인가느이 삶에 닥친 이 모든 저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절망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끔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심지어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선포하셨다.(270)
-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소유가 아닌 상태’로 있으려면, 우리는 현세적인 정의, 태도, 사고방식, 양식이 자신의 신념과 표현을 형성하도록 묵인할 때가 언제인지를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 신앙을 충분히 잘 알 필요가 있다.(275)
- 모든 삶은 거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평범한 것이 가치있고 훌륭한 까닭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것의 주인이듯이 범속한 것의 주인이기도 하시다.(282)
- 우리에게는 자동차 정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나 심장 절개수술을 위한 성경적 원칙이 필요하지 않는데, 굳이 기독교 음악, 기독교 서적, 기독교 미술, 기독교 사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286)
- 많은 신자는 자기 일이 구체적인 의미에서 특별히 기독교적인 특징을 갖는다고 주장함으로써가 아니라, 창조가 창조 자체의 정당한 권리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점을 상기함으로써 교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소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다.(288)
- 현대성은 종교 개혁의 신학적 기초를 부인함으로써 신학이 주는 풍성한 복을 현대 사회의 재앙과 우상으로 만들었다. / 민일 우리가 거룩성에 대한 의식을 되찾기를 바란다면 거룩성의 회복은 은혜를 입으려고 우상들을 의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상들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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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세계관(양승훈, CUP)

 

 

헬라적(그리스적) 사고 : 추상적, 분석적, 사변적, 이원론적

히브리적 사고 : 실제적, 계시적, 유기적, 통합적

 

- 서구인들의 세계관에 대한 관심이 주로 서구 세속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동양의 반기독교적 사상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서구인들에게 이원론의 문제는 주로 세계를 보는 정신 세계에서 나타나는 데 비해 동양에서는 주로 생활태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서구인들에게는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분화된 정신 세계를 통일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고 동양인들에게는 기독교 세계관 내에서 일관성 있는 삶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16) 

 

1장 세계관, 세계를 보는 관점

* 한국에서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서 고려되어야할 점

1) 기독교 세계관이 공허한 철학적 사변으로 흐르지 않도록 일차적으로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2) 내용에 있어서 논리성을 가져야 하지만 지나치게 복잡해서는 안된다. 

3) 기독교 세계관과 전통 사상의 이원 대립적인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4) 이원론에 대한 바른 접근이 필요하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형성(form)된 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왜곡(deform)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에 의해 개혁(reform)되어야 한다. 

 

2장 창조, 시작에 대한 커다란 믿음

- 범신론 : 피조물과 창조주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로 보며, 신을 피조 세계의 일부로 포함시킨다. 

- 유물론적 자연주의 : 하나님 없이 물질 세계만을 받아들임

- 이신론 : 창조주는 세계를 창조한후 더이상 세계를 돌보지 않는다. 피조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사의 진행을 부정

- 이원론 : 초월적인 영역과 자연적인 영역을 이분하여 신을 초월적인 영역에 제한

- 성경의 하나님은 “내재하시면서 동시에 초월하시는 분”이다. 내재성을 강조하면 범신론으로, 초월성만을 강조하면 이원론이나 이신론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 성경의 주된 관심은 신학적이고 영적인 것에 있으며 생물학이나 지질학, 연대기 등과 같은 과학적인 해석이 아니다. 물론 이 말은 성경 기록이 역사적, 과학적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록 성경이 현대의 역사가나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논리 전개 방법이나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경은 역사적 시공의 영역에서 이들의 연구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비역사적이라기 보다는 초역사적이요, 비과학적이라기 보다는 초과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58)

 

* 창조의 의미 

1) 창조주와 피조물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2) 만물은 의존적이다. 

3) 창조에는 목적이 있다. 

4)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조세계를 다스리도록 문화명령을 주셨다. 

5)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인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에 피조 세계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3장 타락, 창조주와의 결별

* 우상숭배와 관련한 성경적 견해

1) 인간은 종교적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대신 다른 것을 섬길 수 밖에 없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 중립적인 상태에 있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를 섬길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어거스틴은 종교적 집중이라고 불렀다. 

2)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경배하는 대상을 닮아 간다. 

3) 인간은 자기가 숭배하는 대상을 닮아 갈 뿐만 아니라 그 닮은 모습에 따라 문화를 형성한다. 

 

4장 구속, 피묻은 십자가의 수용

- 구속은 원래 상태로의 회복을 위미한다. 회복으로서의 구속이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처음의 완전하고도 무흠한 상태가 있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파괴되었음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회복이란 말 그대로 돌아가는 것, 혹은 되찾는 것을 의미한다. 

 

* 개인적 구속의 의미

1) 구원은 신분의 변화를 의미한다.(죄인-의인), 하나님의 자녀가 됨

2) 구속에는 재창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3) 구속은 일종의 과정이다. 

 

- 세계관은 아르키메데스의 고정점과 같아서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해석을 내릴 수 있는 기준 틀이 된다.(108)

 

5장 인간, 고개 돌린 하나님의 형상

* 유물론적 인간관 : 인간을 물질, 복잡한 기계로 여김

* 진화론적 인간관 : 모든 생물체가 물질로부터 저절로 생겨났다고 여김

* 성경적 인간관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아다는 의미

1)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이며 인격적인 하나님과 교제하며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2) 인간이 존귀한 존재임을 의미

3) 인간에게 영적 특성이 남아 있음 

 

6장 죽음, 숨겨진 교만의 진실

- 죽음을 끝, 존재의 소멸이라고 보는 유물론적 혹은 무신론적 실존주의 세계관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끝없는 윤회의 한단계로 보는 세계관(불교, 힌두교)

* 성경에서의 죽음의 의미

1)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왔다.  

2) 죽음은 소멸이 아니며 죽음 후의 세계가 있다. 

3) 죽음은 절망이 아니며 죽음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해결되었다. 

4) 죽음 후의 세계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며 이 땅 위에서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7장 윤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 윤리학의 세가지 기본 질문

1) 인간 행동의 동기는 무엇인가?

2) 인간 행동의 표준은 무엇인가?

3) 인간 행동의 목표나 목적은 무엇인가?

 

- 인간을 자연 발생된 존재로 보는 유물론적, 진화론적 견해에서는 시대, 지역, 민족, 상황에 따라 인간의 필요가 변하면 도덕의 기준도 변한다고 보는데 이것을 상황윤리라고 한다.(142)

-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보는 인본주의

- 무속적 윤리 : 현세적이며 삶을 구속한다. / 기복성 / 

- 불교의 불가지론 : 선과 악은 하나

 

* 기독교적 윤리

1)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주권적이며 인격적이고 도덕적이다.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과 달리 도덕적인 가치와 선택을 수용한다. 

3) 인간이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거룩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8장 역사, 구속을 향해 가는 달력

- 순환적 사관 : 무한 반복, 중국, 인도

- 진보주의적 사관 :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 헤겔의 변증법 / 헤겔은 정반합이라는 논리적 변증법을 통해서 역사속에서 자신을 실현시켜 나가는 절대정신을 보았으나 마르크스는 절대정신을 제거해 버리고 역사는 계급간의 투쟁, 갈등, 긴장을 통해서 계급없는 사회를 향해 나간다고 보았다. 

* 기독교는 구속의 역사 : 처음부터 역사는 분명한 의미와 목적을 가진것으로 생각한다. / 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9장. 결혼, 하나됨의 미학

* 결혼에 대한 다양한 견해 : 진화론적 결혼관(종족 번식 본능), 기계론적 입장(화학물질, 호르몬의 분비), 쾌락주의(DINK-Double Income, No Kid), 한탕주의와 물질주의(신데렐라, 온달 신드롬), 여성해방 운동

 

* 자녀에 대한 견해

1) 저주로서의 자녀관, 2) 우상으로서의 자녀관, 3) 축복과 상급으로서의 자녀관(성경적)

 

* 성경적 결혼관에 대한 실제적 제안

1) 거룩한 삼각관계, 2) 옆으로 서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3) 레디 메이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4) 결혼은 사람과 하는 것임을 기억하라(조건만을 보지 말라)

 

10장 노동, 땀 흘리는 수고의 기쁨

- 노동 :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움직임이나 즐기기 위한 오락이 아니라 수고하여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노동이란 일정한 목적을 두고 생산성 있게 일하는 행위이다. 

 

* 노동에 대한 비기독교적 견해

1) 저주설 : 고대 그리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크스, 불교나 힌두교, 유교나 노장사상

2) 방편설 : 생존의 방편 / 자아실현과 성취의 수단 / 노동을 헌금의 방편으로만 보는 것

 

*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노동

1)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 법칙이요 명령이다.(문화 명령)

2) 노동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본다.(삶 전체를 예배로 보는 견해)

3)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연결된다.(소명)

4) 이웃 사랑의 표현

 

11장 국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제도

* 국가와 교회의 관계

1) 적대적 관계

2) 국가는 교회의 일부라는 견해 : 카톨릭

3)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 종교개혁전통

- 우리는 불의가 판치는 현실속에서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용기와 불의에 참여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세

1) 정부나 모든 제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

2)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한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3) 국가의 권세와 제도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지만 인간의 본성적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벗어날 수 있다.

4) 세상의 권세와 제도를 보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은 어느정도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12장 지식, 앎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

* 지식에 대한 견해

1) 그리스적 앎이란 : 인간의 이성은 자율적, 자충족적이고 본질적으로 선하며 그 이성을 통하여 지식과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다.(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2) 히브리적 앎(성경적 앎) : 참된 지식이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또는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었다.(잠 1:7; 9:10)

- 안다라는 의미의 차이 : 그리스적 지식관에서는 지식이란 차가운 이성적 추론의 결과 얻어진 관조적인 것이나 명상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적 지식에서는 행함과 유리된 관념적이고 사변적 지식은 아직 아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지식의 결과 행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앎과 더불어 실제적인 행함이라는 불가분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다는 히브리어 ‘야다’는 인식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 뿐 아니라 대상에 대한 책임이나 대상과의 관계성까지 포함하는 말이다.(234)

-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신 이유 : 히브리적 앎에서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안다는 말은 곧 악을 행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 성경이 보여주는 지식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행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점

1) 신앙의 개인주의화

2) 교회 중심의 종교 생활에만 열심을 내는 신앙의 형식화를 조장

3)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의 형식화(구원의 확신 공식을 강조)

 

-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식도 실천과 연결되지 못하고 이론적인 지식으로 남게 된다면 의미가 없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단순히 세계를 보는 정적인 입장으로만 남아 있는게 아니라 생동감 있게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날 때 바른 지식, 살아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243)

 

13장 학문, 다양한 창조 질서의 연구

- 학문이란 :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의심스러운 것을 묻는 것(역경), 지혜를 사랑하는 것

 

* 학문에서 기독교적 조망이 중요한 이유(허만)

1)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다른 신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2) 사람은 자기들이 섬기는 대상의 형상에 따라 자기를 형성해가기 때문에

3)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그들이 경배하는 대상을 따라 형성되어 가기 때문에

 

-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 : 아퀴나스의 영향으로 자연과 은총, 신앙과 이성이 나뉘었다. 이는 학문과 신앙, 과학과 종교, 영혼과 육신, 전도와 사회참여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기독교적 학문 연구란 : 학문의 전 과정, 즉 학문의 의미, 과정, 방법, 목적, 응용, 심지어 학문의 동기까지 기독교 세계관적 기초위에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온전한 기독교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255)  

 

14장 이데올로기, 얼굴없는 우상

- 이데올로기란 혁명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몽주의자들이 사용한 가치, 개념, 신념, 규범의 체계 / 즉 이데올로기는 의식의 산물, 즉 관념의 체계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

 

* 이데올로기의 특징 : 1) 자신의 존재에 근본적은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체계를 갖고 있다. 20 자신과 객관적 주변 조건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가져다주는 분석 체계를 가진다. 3) 원망과 확신에 의해서 자기의 잠재적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신념 체계, 4) 구체적인 사회적 쟁점에 대한 수단과 태도를 선택하는 행동체계를 갖는다. 

- 이데올로기는 기본적인 신관, 인간관, 윤리관, 세계의 이해에 대해서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한다. 

- 도여베르트는 이데올로기란 다양한 양상을 가진 피조세계에서 오직 한 양상만을 확대시켜 나머지 모든 양상들을 그 양상으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 기독교가 현실 문제의 해결만을 지상 목표로 삼는다거나 반대로 현실문제도 도외시하고 내세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기독교 신앙도 또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위험이 크다.(270) / 그러므로 초월 세계를 상실한 종교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고, 따라서 다른 이데올로기를 초월적 입장에서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다.(271)

 

15장 과학, 물질계에 대한 청지기적 과업

- 과학의 급속한 발달과 엄청난 영향력 그리고 지나치게 분화된 과학과 다원화된 사회구조는 과학의 이데올로기화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과학에 대한 무지는 경외심을 일으키고, 경외심에서 공포가, 공포감에서 우상숭배가 시작된다.(275-6)

- 갈릴레오는 "성경도 자연현상도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유래하고 있다. 전자는 성령의 명령을 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집행한다”라고 말했다.(283)

- “극한의 가난과 처참한 30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페스트로 아내와 자식을 잃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케플러로 하여금 일생 천문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한 것은 자신의 연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처럼 자신은 천체의 운행을 연구하여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솜씨를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천문학으 제사장이라고 생각했다.”(286)

 

16장 기술, 다스리며 지키기 위하여

* 우상화된 기술 : 과학기술의 이데올로기화 / 환경파괴(지구온난화, 로마클럽 보고서) / 시스템적 세계관의 한계(문제는 굶주림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나누려고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 기술에 대한 바른 청지기적 자세

1) 기술 이데올로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첨단 기술에 대한 우상숭배를 버리고 이의 도구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 과학의 절대화로 생긴 성부 과학주의, 과학주의가 낳은 성자 기술주의, 물질적 부요라는 영감으로 과학주의와 기술주의를 가속화시키는 성령 경제주의의 삼위일체

3) 기술로부터 도피하려는 자세로부터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술 분야에서 선한 청지기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더이상 이 세상에서 문화 추종자(Culture follower)가 아닌 문화 형성자(Culture former)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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