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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Adam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ore Cain, saying, “I have gotten1 a man with the help of the Lord.” And again, she bore his brother Abel. Now Abel was a keeper of sheep, and Cain a worker of the ground. In the course of time Cain brought to the Lord an offering of uthe fruit of the ground, and Abel also brought of vthe firstborn of his flock and of their fat portions. And the Lord whad regard for Abel and his offering, but xfor Cain and his offering he had no regard. So Cain was very angry, and his face fell. The Lord said to Cain, “Why are you angry, and why has your face fallen? yIf you do well, will you not be accepted?2 And if you do not do well, sin is crouching at the door. zIts desire is contrary to3 you, but you must rule over it.”

1 Cain sounds like the Hebrew for gotten

u Lev. 2:12; Num. 18:12

v Ex. 13:12; Num. 18:17; Prov. 3:9

w Heb. 11:4

x [Prov. 21:27]

y Eccles. 8:12, 13; Isa. 3:10, 11; Rom. 2:6–11

2 Hebrew will there not be a lifting up [of your face]?

z ch. 3:16

3 Or is toward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4:1–7.

 

 

1절) 한글 성경은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영어 성경은 'Now Adam knew Eve his wife,’라고 표현한다. 본문에서 동침하매라고 표현된 히브리어 단어가 ‘야다’이다. 이는 성관계를 가지다라는 의미와 알다, 깨닫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יָדַע (yādaʿ I), q. observe, realize, find out, recognize, perceive, care about, be(come) acquainted with, have sexual relations with, choose, (come to) understand, know, have insight; ni. reveal self, be noticed, be(come) known, know self, gain insight; pi. cause to know; pu. someone (thing) known; hi. inform, announce, teach, give signal; ho. set forth, be brought to awareness; hitp. make self known (#3359); nom. דֵּעַ (dēaʿ), wisdom (#1976); דֵּעָה (dēʿâ), knowledge (#1978); דַּעַת (daʿat I), knowledge, ability, knowledge of, insight (#1981); מַדָּע (maddāʿ), knowledge (#4529); מֹדָע (mōdāʿ), kinsman (#4530); מֹדַעַת (mōdaʿat), kinsman (hapleg. in Ruth 3:2; #4531); יִדְּעֹנִי (yiddeʿōnî), soothsayer (#3362).

q. qal

ni. niphal

pi. piel

pu. pual

hi. hiphil

ho. hophal

hitp. hitpael

hapleg. hapax legomenon

 Willem VanGemeren, e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Old Testament Theology & Exegesis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409.

이 히브리어 단어는 서로 가까운 관계속에서 육체적인 관계의 친밀함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여러가지가 중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깊은 앎이 바로 남녀가 하나되는 관계속에서의 앎이고 지금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가인을 낳은 것이다. 

가인이 태어날 때 아담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말한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았다라는 의미인데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후손을 무찌를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여자의 후손의 집합적인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메시아에 대한 대망을 희석시켜서는 안된다.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에게 메시아 대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창세기 3:20이다. 아담이 아내를 하와라고 부르며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의미를 붙인 것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이런 구원론적 후손 개념은 창세기 4장에도 나타난다. 창세기 4:1의 한글 번역은 평범한 문장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히브리어 표현은 주석가들에게 깊은 고민을 안겨 준다.

וְהָ֣אָדָ֔ם יָדָ֥ע אֶת־חַוָּ֣ה אִשְׁ֑תּוֹ וַתַּ֙הַר֙ וַתֵּ֣לֶד אֶת־קַ֔יִן וַתֹּ֙֔אמֶר קָנִי֥תִי אִישׁ אֶת־יְהוָֽה

베하아담 야다 에트-하와 이쉬토 와타할 와테레드 에트-카인 와토멜 카니티 이쉬 에트-야웨

창세기 4:1은 ‘베하아담’(וְהָ֣אָדָ֔ם)을 동사 ‘야다’(יָדַע)앞에 두어 주어 아담을 강조하고 있다. 아담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였는데, 동사 ‘야다’(יָדַע)는 일반적으로 ‘알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종종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2) 창세기 4:1은 아담의 아내의 이름 하와를 사용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창세기 3:20과 더불어 오직 창세기 4:1에서만 하와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다. 이 이름은 당연히 아담의 아내가 모든 산 자의 어미됨을 상기시킨다. 창세기 4:1은 첫 문장에서만 아담을 주어로 사용하고 다음 문장부터 창세기 4:2의 첫째 문장까지 하와를 주어로 내세운다. 그리고 아담의 목소리는 창세기 4장에서 다시 들리지 않지만 하와의 목소리는 두 번이나 더 들린다.3) 창세기 4:1 마지막 문장이 하와의 목소리이고 창세기 4장 마지막 부분인 창세기 4:25에서 셋을 낳았을 때 하와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만큼 최초의 출산과 관련하여 하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와는 아들을 낳고 가인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유가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하와가 이런 말을 하였다는 것은 그녀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완벽하게 회복하였음을 보여 준다.4) 아들 둘을 낳으면서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대가인 출산의 고통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하와는 가인을 낳고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창세기 4:25에서 셋을 낳고 이름을 붙여 주면서 또 다시 하나님을 언급하며 셋은 하나님이 주었다고 고백한다. 둘째는 하와의 말은 메시아 신앙을 담고 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와의 말의 히브리어 표현을 다시 보자.

קָנִי֥תִי אִ֖ישׁ אֶת־יְהוָֽה 카니티 이쉬 에트–야웨

이 문장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내가 여호와와 함께 사람을 낳았다. 둘째, 내가 사람 즉 여호와를 낳았다. 어느 뜻으로 해석하던지 아주 충격적인 표현이다. 첫째 표현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하와에게 임신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말이다. 신성모독을 피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임신하게 한 것 정도일 수 있지만, 이 표현 자체는 그 이상으로 하와가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5) 둘째 해석은 하와가 가인을 낳고 그를 여호와로 간주하였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앞 문장과 비교해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וַתַּ֙הַר֙ וַתֵּ֣לֶד אֶת־קַ֔יִן 와타할 와테레드 에트–카인

וַתֹּ֕אמֶר קָנִ֖יתִי אִ֖ישׁ אֶת־יְהוָֽה 와토멜 카니티 이쉬 에트–야웨

동사 ‘카나’(קָנָה)는 ‘얻다,’ ‘창조하다,’ ‘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6) 이 중에서 카나는 창조하다 또는 생겨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글 성경의 번역처럼 ‘이쉬’(אִישׁ)와 함께 득남하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카나는 앞 문장의 ‘와테레드’(וַתֵּלֶד)와 동의어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쉬’를 뺀 ‘카니티 에트–야웨’와 ‘와테레드 에트 가인’은 동일한 의미를 전달할 목적으로 사용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 ‘카니티 이쉬 에트–야웨’는 무슨 의미일까?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사람 즉 여호와를 낳았다.”

즉 하와는 가인을 낳고 이를 여호와를 낳았다고 말하고 있다.7)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이 표현을 도대체 무슨 의도로 하와는 사용하였을까? 이 표현은 창세기 3:15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들은 창세기 3:15의 사탄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문제이다. 4:1에 3:15의 후손(제라, זֶרַע)이라는 표현이 없지만, 4:25에서 하와가 셋을 아벨을 대신한 다른 후손(זֶרַע אַחֵר)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가인과 아벨은 후손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하와가 ‘여호와를 낳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사탄과 그의 후손을 멸망시키고 자신들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여자의 후손’을 메시아적인 인물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8) 그래서 모든 산자들의 어미인 하와는 가인을 낳았을 때 그를 메시아적인 인물로 기대하며 이렇게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의 이 같은 기대가 곧 무너졌다는 것이 둘째 아들을 낳을 때 드러난다.9) 하와는 둘째의 이름을 아벨이라 지었는데, 그 뜻은 ‘덧 없음’ 또는 ‘무’이다. 왜 아벨에게 이 같은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아벨의 이름을 아벨이 죽고 난 후 그의 생명의 짧음과 죽음을 슬퍼하며 지어 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를 예언하며 지었을 수도 있다.10)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면, 가인에 대한 기대, 사람에 대한 기대가 덧 없었음을 나타낼 수 있다. 왜 가인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졌을까? 가인의 행동 때문이 아닐까?

2) 창세기 4:17, 25에서도 ‘야다’(ידע)는 성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창세기 4:25의 첫 문장의 주어는 아담이다.

4) Kenneth Mathews, Genesis 1–11:26, 265. Derek Kidner, Genesis, 74. 세일하머는 하와의 행동을 사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손을 얻으려한 행동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John Sailhamer, Pentateuch as Narrative, 112.

5) T. A. Perry, “Cain’s Sin in Gen 4:1–7: Oracular Ambiguity and How to Avoid it,” Prooftexts 25 (2005): 259.

6) 가인!(קַיִן)의 이름은 ‘카나’(קנה)에서 나왔다.

7) John Walton, Genesis, 261–262.

8) Victor Hamilton, Genesis 1–17, 221.

9) Walter C. Kaiser, Toward an Old Testament The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78), 37. 비록 칼빈 자신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았지만, 칼빈 시대에도 이 같은 해석이 있었다. Calvin, Genesis, 190.

10) Keil, Genesis, 109. Gordon Wenham, Genesis, 102.11 Josephus, Aniquities 1.2.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61–164.

 

2-5절) 하와는 이후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이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아벨은 목자였고 가인은 농부였다. 서로 다른 직업이었기에 서로 다른 것, 자신의 수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까? 이 당시는 아직 제사 규정이 주어지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단순하게 하나님은 고기를 좋아하신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까 드려진 제물이 무엇인가, 가축인가 아니면 곡식인가 때문이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린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아벨은 양의 첫 새끼, 곧 더 값비싸고 소중한 것을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더 큰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후의 레위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제물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가인이 드린 제물(신 26:2)이나 아벨이 드린 제물(신 15:19-23)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신 26:2, 개정)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신 15:19-23, 개정) 『[19]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은 구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것이니 네 소의 첫 새끼는 부리지 말고 네 양의 첫 새끼의 털은 깎지 말고 [20]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21] 그러나 그 짐승이 흠이 있어서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무슨 흠이 있으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잡아 드리지 못할지니 [22] 네 성중에서 먹되 부정한 자나 정한 자가 다 같이 먹기를 노루와 사슴을 먹음 같이 할 것이요 [23] 오직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지니라』

(출 34:19-20, 개정) 『[19] 모든 첫 태생은 다 내 것이며 네 가축의 모든 처음 난 수컷인 소와 양도 다 그러하며 [20] 나귀의 첫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장자는 다 대속할지며 빈 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

(레 3:16, 개정)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음식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지금까지의 본문을 통해서 가인의 성품이나 믿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이후 이어지는 절들의 내용을 보면 가인은 동생 아벨에게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가인과 아벨을 이렇게 평가한다. 

(요일 3:12, 개정)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히 11:4, 개정)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Although Cain and Abel have contrasting occupations and present different types of offerings to God, the present episode is not designed to elevate herdsmen over farmers, or animal offerings over plant offerings. One way to explain why God had regard for Abel and his offering, but not for Cain, is to posit that Abel’s offering, being of the firstborn of his flock, is a more costly offering, expressing greater devotion. Another way to explain the difference is first to observe that both offerings are recognizable parts of the later Levitical system: for Cain’s offering of the fruit of the ground (v. 3), cf. Deut. 26:2 (an offering expressing consecration), and for Abel’s offering of the firstborn of his flock, cf. Deut. 15:19–23 (a kind of peace offering, a meal in God’s presence). But at no point does the Bible suggest that offerings work automatically, as if the worshiper’s faith and contrition did not matter; and Cain’s fundamentally bad heart can be seen in his resentment toward his brother and in his uncooperative answers to God in the rest of the passage. Several NT texts derive legitimate inferences from this narrative, namely, that Cain demonstrated an evil heart by his evil deeds, while Abel demonstrated a pious heart by his righteous deeds (1 John 3:12); and that Abel offered his sacrifice by faith and was commended as righteous for that reason (Heb. 11:4).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7.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제물 자체만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래서 4절은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아벨의 삶, 그의 의도, 믿음자체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 했다는 것이다. 아벨의 경우처럼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은 이유가 제물 자체보다는 제물을 드리는 당사자와 관련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6-7절)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심으로 인하여 가인은 안색이 변할 정도로 몹시 분했다. 이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신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식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질문하시며 그의 잘못을 뉘우칠 것을 바라셨다. 가인은 지금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못하고 왜 나만 미워하시냐며 하나님께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을 붉히며 하나님앞에서 분해하는 이 모습을 보시면서 맹수가 우리를 잡기 위해서 문앞에 조아리고 있는 것처럼 죄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모습을 상기시키시며 죄에 빠지지 말것을, 그 죄가 우리를 삼키려고 하나 그 죄를 다스릴 것을 촉구하신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이라고 했는데, 가인이 누구에게 선을 행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아담과 하와가 포함되겠지만, 가인의 다음 반응으로 보아 아벨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어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문 앞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그를 삼키려 할 것이다고 경고한다. ‘로베츠’(רֹבֵץ)는 ‘라바츠’(רָבַץ)의 분사형이며 죄가 가인을 삼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노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인에게 그 죄를 다스리라고 한다. 이 말은 창세기 3:16에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표현과 매우 흡사하다:

창 3:16וְאֶל־אִישֵׁךְ֙ תְּשׁ֣וּקָתֵ֔ךְ וְה֖וּא יִמְשָׁל־בָּֽךְ베엘–이섹 테수카텍 베후 임살–박

창 4:7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베에레이카 테수카토 베앝타 팀살–보

하나님은 창세기 3:16에서 하와에게 했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상이 아담과 하와에서 가인과 죄로 바뀌었다. 테수카(תְּשׁוּקָה)는 사자가 먹이를 삼키려하는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 즉 죄의 욕망이 문 앞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가인을 삼키려고 하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고 통제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죄가 가인을 삼키게 되고 가인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아담과는 달리 경고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들판에서 죽인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하와로부터 그렇게 기대 받았던 가인에 의해 저질러진다.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는 죄에 대한 형벌을 자신의 죽음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죽음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이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았다는 것은 아벨이 집합적 포괄적 의미에서 여자의 후손임을 보여준다. 그런 차원에서 아벨의 죽음은 뱀의 후손에 의한 여자의 후손의 첫 번째 희생이 된다. 그리고 기대했던 장자 가인은 에덴의 동편에서 또 다시 추방된다.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7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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