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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e Lord God said to the serpent,

“Because you have done this,

cursed are you above all livestock

and above all beasts of the field;

on your belly you shall go,

and fdust you shall eat

all the days of your life.

15  I will put enmity between you and the woman,

and between your offspring5 and gher offspring;

hhe shall bruise your head,

and you shall bruise his heel.”

16 To the woman he said,

“I will surely multiply your pain in childbearing;

iin pain you shall bring forth children.

jYour desire shall be contrary to6 your husband,

but he shall krule over you.”

17 And to Adam he said,

“Because you have listened to the voice of your wife

and have eaten of the tree

lof which I commanded you,

‘You shall not eat of it,’

mcursed is the ground because of you;

nin pain you shall eat of it all the days of your life;

18  thorns and thistles it shall bring forth for you;

and you shall eat the plants of the field.

19  By the sweat of your face

you shall eat bread,

till you return to the ground,

for out of it you were taken;

ofor you are dust,

and pto dust you shall return.”

20 The man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7 21 And the Lord God made for Adam and for his wife garments of skins and clothed them.

f Isa. 65:25; Mic. 7:17

5 Hebrew seed; so throughout Genesis

g Isa. 7:14; Mic. 5:3; Matt. 1:23, 25; Luke 1:34, 35; Gal. 4:4; 1 Tim. 2:15

h Rom. 16:20; Heb. 2:14; Rev. 20:1–3, 10

i [John 16:21]

j ch. 4:7; Song 7:10

6 Or shall be toward (see 4:7)

k 1 Cor. 11:3; 14:34; Eph. 5:22–24; Col. 3:18; 1 Tim. 2:11, 12; Titus 2:5; 1 Pet. 3:1, 5, 6

l ch. 2:17

m ch. 5:29; [Rom. 8:20–22]

n Eccles. 2:22, 23

o ch. 2:7; Ps. 103:14

p Job 34:15; Ps. 104:29; Eccles. 3:20; 12:7; Rom. 5:12

7 Eve sounds like the Hebrew for life-giver and resembles the word for living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Ge 3:14–21.

 

 

 

14-15절) 뱀이 받은 심판, 아담과 여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했는지 물으시지만 뱀에게는 묻지 않으시고 바로 심판을 내리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다.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을 먹을 것이다. 또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앞서 1절에서 뱀은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다(아룸)라고 언급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뱀이 모든 짐승보가 더욱 저주(라루르)를 받았다라고 말씀하신다. 여자를 유혹했기 때문에 뱀은 이제부터 모욕을 받을 것이다. 

 

본문에서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라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며 심판의 이유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배로 다니고 살아있는 동안 흙은 먹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뱀이 받은 심판은 우선적으로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추해보건데 에덴동산에서 뱀은 다리가 있었고 걸어다녔음을 알 수 있다. 뱀은 다른 짐승들보다 더 간교한 존재였는데 이제 다른 짐승들보다 열등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싸움

15절은 원시 복음(protoevengelium)이라고 불린다. 본문의 뱀은 사탄을 의미하고 여인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따라서 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싸움은 바로 사단과 그리스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뱀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받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승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는 죽음에 머무르시지 않고 부활하신다. 따라서 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심으로 영원한 승리를 성취하신다.  

- This defeat is implied by the serpent’s being bruised in the head, which is more serious than the offspring of Eve being bruised in the heel. For this reason, v. 15 has been labeled the “Protoevangelium,” the first announcement of the gospel. This interpretation requires that the serpent be viewed as more than a mere snake, something which the narrative itself implies, given the serpent’s ability to speak and the vile things he says. While the present chapter does not explicitly identify the serpent with Satan, such an identification is a legitimate inference and is clearly what the apostle John has in view in Rev. 12:9 and 20:2. The motif of the offspring of the woman is picked up in Gen. 4:25 with the birth of Seth; subsequently, the rest of Genesis traces a single line of Seth’s descendants, observing that it will eventually produce a king through whom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will be blessed (see Introduction: History of Salvation Summary). he shall bruise your head, and you shall bruise his heel. Some interpreters have suggested that by saying “he” and “his,” the intended meaning is that one particular offspring is in view. Within the larger biblical framework, this hope comes to fulfillment in Jesus Christ, who is clearly presented in the NT as overcoming Satan (Heb. 2:14; 1 John 3:8; cf. Matt. 12:29; Mark 1:24; Luke 10:18; John 12:31; 16:11; 1 Cor. 15:24; Col. 2:15),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bruised.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6.

 

본문은 뱀과 여자의 적개심, 너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적개심, 그는 너의 머리를, 너는 그이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을 말한다. 본문을 통해서 아담과 뱀이 아니라 여자와 뱀이 원수가 된다라는 말은 그 이전에 뱀과 여자의 관계가 우호적인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보다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게 된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와는 사탄을 미워하고 서로 원수가 된 것이다. 이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누구일까? 모두 사람들이다. 뱀의 후손은 바로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괴롭힌다.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예표하지만 동시에 여자의 신앙을 이어가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롬 16:20) 롬 16:20은 사탄의 머리를 발로 짓밟는 것을 예수님에게만 한정시키지 않고 성도들의 영적 싸움으로 확장시킨다. 

 

16절) 여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여인이 임신하여 잉태하는 고통은 대단하다. 이 고통을 감수해야만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린다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은 원래 돕는 배필로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죄로 인하여 깨어진 것을 의미하고 있다. 결혼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주도권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가장의 역할을 부여하셨다. 아내를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면서 보호하고 살펴야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아내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본문에 원하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테슈카’는 욕망, 갈망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곳과 창 4:7; 아 7:10에만 등장한다. 결국 죄로 인해 하와는 아담을 거슬러서 그를 지배하려는 잘못된 욕망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결혼과 관련되어 세우신 하나님의 질서를 거슬러서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려고 하는 관계로 전락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죄의 결과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이자 공동체인 가정, 부부 생활의 왜곡과 파괴로 이어진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주신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자기중심성을 추구한 결과이다.

Your desire shall be for your husband, and he shall rule over you. These words from the Lord indicate that there will be an ongoing struggle between the woman and the man for leadership in the marriage relationship. The leadership role of the husband and the complementary relationship between husband and wife that were ordained by God before the fall have now been deeply damaged and distorted by sin. This especially takes the form of inordinate desire (on the part of the wife) and domineering rule (on the part of the husband). The Hebrew term here translated “desire” (teshuqah) is rarely found in the OT. But it appears again in 4:7, in a statement that closely parallels 3:16—that is, where the Lord says to Cain, just before Cain’s murder of his brother, that sin’s “desire is for you” (i.e., to master Cain), and that Cain must “rule over it” (which he immediately fails to do, by murdering his brother, as seen in 4:8). Similarly, the ongoing result of Adam and Eve’s original sin of rebellion against God will have disastrous consequences for their relationship: (1) Eve will have the sinful “desire” to oppose Adam and to assert leadership over him, reversing God’s plan for Adam’s leadership in marriage. But (2) Adam will also abandon his God-given, pre-fall role of leading, guarding, and caring for his wife, replacing this with his own sinful, distorted desire to “rule” over Eve. Thus one of the most tragic results of Adam and Eve’s rebellion against God is an ongoing, damaging conflict between husband and wife in marriage, driven by the sinful behavior of both in rebellion against their respective God-given roles and responsibilities in marriage. (See notes on Eph. 5:21–32 for the NT pattern for marriage founded on the redemptive work of Christ.)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6.

 

출산의 고통을 표현할 때 일반적으로는 이 단어들을 쓰지 않고 헤벨(חֵבֶל)힐(חִיל), 칠(צִיר), 차라(צָרָה)같은 단어를 쓴다. 그러나 창세기 3:16은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히브리어 나무(에츠, עֵץ)의 발음이 담긴 ‘에쳅’(עֶ֖צֶב)과 ‘이 차본’(עִצְבוֹן)을 사용하였다.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46–147.

 

마찬가지로 홁을 먹을 것이라는 저주에 대해서도 뱀의 일상 음식을 묘사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흙이나 불결한 것을 음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고대 문헌을 보면 이것은 지하세계를 묘사하는 전형적인 표현들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엔키두는 임종하는 순간에 지하세계에 대한 꿈을 꾸면서, 그곳을 빛이 없는 곳,  “흙이 그들의 음식이며 진흙이 그들의 빵인”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뒤의 이슈타르의 지하세계 하강을 통해 알려진 묘사이기도하다. 이러한 묘사들은 무덤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지하세 계 의 특징으로 보는 것이 가장 일리 있는 것 같다. 시신의 입을 채우지만, 뱀 이 땅 위를 기어 다니게 될 것이므로 뱀의 입을 채우게 될 것이다. 이런 배경 정보를 놓고 보건대, 뱀에 대한 저주는 온순함(배로 기어다님)과 죽음(흙을 먹음)과 관련된 상태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NIV 적용주석)

 

17-19절) 아담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내려진 심판은 아담 본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땅에게도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 선악과를 먹었은즉 일차적으로 땅이 너의 범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이로 말미암아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될 것이다. 땅은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고 네가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을 것이다. 네가 그것(흙)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자와 뱀과는 다르게 아담의 심판에는 유일하게 심판의 이유가 담겨 있다. 그 심판의 이유는 먹지 말라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이는 선악과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이 아담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담은 언약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했는데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아내의 말을 들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음으로 범죄했기 때문에,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고 먹는 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게 하신 것이다. 동산의 모든 것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이제 빼앗긴 것이다. 이제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땀흘리는 수고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은 일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일할 때 뒤따르는 수고와 고통과 좌절감(이치본-고통)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땅은 생산력이 현저하게 감소되었고 땀흘림의 수고와 고통을 통해서만 열매를 얻게 된 것이다. 

 

땅이 저주를 받은 이유.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아담의 범죄로 밀미암아 땅이 함께 저주를 받고 있다.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의미, 아담의 몸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원래 창조 질서에서 이와 같이 계획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성경에 의하면 피조물은 죄의 결과인 사망으로부터 해방되는 때를 고대하고 있다.(롬 8:19-22) 그 때가 이르면 자연은 더이상 형벌의 장소가 아닐 것이다. 자연이 영화롭게 될 때 사람들이 그것을 관리하고 그것의 충분한 잠재력을 끌어내게 될 것이다. 인간의 죄로 땅, 자연, 피조세계는 타락을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 구원이 완성될때 피조세계는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Further, the man’s body will return to the ground (v. 19), i.e., it will die (which was not true of the original created order; cf. Rom. 5:12). For this reason, the Bible looks forward to a time when nature will be set free from the consequences of human sin; i.e., nature will no longer be the arena of punishment, and it will finally have glorified human beings to manage it and bring out its full potential (Rom. 8:19–22).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7.

 

 아담의 벌이 기록된 17–19절에서 히브리어 동사 아칼(אָכַל)이 무려 네 번 사용되었다. 먹는 문제는 다시 땅과 연결이 된다. 창세기 2:5이 땅에 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로 하나님의 비 내리는 역할과 함께 인간의 노동이 제시하였던 것과는 달리, 창세기 3:17에서 아담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로 땅과 싸워야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아담을 저주하지 않고 아담 때문에 땅을 저주한다.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된다.49) 하와가 그녀의 존재의 근원인 아담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벌을 통해 둘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파손된 것처럼, 아담과 그의 존재의 근원인 땅 사이의 관계가 철저히 파괴된다. 로마서 8:18–23에서 바울은 땅이 이 저주 상태에서 벗어날 때를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와의 형벌이 그녀의 사역의 핵심 대상인 아담과 관련된 출산의 고통인 것처럼 아담의 형벌은 이 땅과 관련된 노동의 고통이다. 노동 자체가 벌이 아니라, 노동에 따른 고통이 벌이다. 즉 아담은 그로 인해 저주 받은 땅이 내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제거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는 일을 평생 반복해야만 된다. 17절의 ‘종신토록’은 인간의 생명에 한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둘째 형벌은 아담을 비롯한 인류의 죽음이다. 흙으로 돌아 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창세기 2:17의 말씀의 결과이기도 하다.50) 창세기 3:19은 둘째 징벌과 관련하여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죽음을 땅과의 관계 속에 정의된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죽어 땅으로 돌아가야 된다. 둘째,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 때 부여하였던 두 가지 요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그리고 생령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단지 아담이 흙으로 만든 사실만 교차 대구법의 구조 속에 거듭 강조하고 있다.

A עַ֤ד שֽׁוּבְךָ֙ אֶל־הָ֣אֲדָמָ֔ה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B כִּ֥י מִמֶּ֖נָּה לֻקָּ֖צְתָּ 네가 그 것(땅)에서 취함을 받았기 때문에

B’ כִּֽי־עָפָ֣ר אַ֔תָּה 너는 흙이니

A’ וְאֶל־עָפָ֖ר תָּשֽׁוּב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49) 둠브렐은 땅의 저주를 인간이 땅을 바르게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과 관련있다고 본다. William Dumbrell, “Genesis 2:1–3: Biblical Theology of Creation Covenant,” ERT 25(2001): 228–229.

50)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즉시 죽지 않은 것을 두고, 창세기 2:17의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이런 생각은 창세기 2:17의 말씀을 선악과가 치명적인 독을 가 진 열매 나무로서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를 줄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2:17을 선악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명에 제한을 둔다는 말로 이해하면 아담과 하와가 즉시 죽지 않은 것을 모순으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49–150.

 

20-21절) 선악과 범죄이후에 이제 아담은 그이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든 산자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 20-21절을 통해서 두가지의 소망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첫번째는 아담이 그의 아내에게 하와(이브)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하와는 생명 또는 생명을 주는 자를 의미한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이 부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신 것이다. 선악과의 결과로 벗은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나님의 시선을 피해 숨은 이들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신 것이다. 나뭇잎 옷은 불완전하다. 그런데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물을 잡아야만 한다. 이 짐승의 죽음은 후대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짐승의 희생제물을 통한 속죄 제사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옷은 몸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고대 근동 사회에서 옷은 인간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나타내거나 외적인 멋을 위해서 입기도 했다. 옷을 벗어주는 것은 상속과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가죽옷을 볼 때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범죄를 기억했으며 동시에 그러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자산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했을 것이다. 결국 가죽옷은 이러한 범죄와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슥 3:4) 본장에서 하나님은 무호과 나무옷을 벗기고 가죽옷으로 갈아입혔지만 슥 3:4에서는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이 입힌다.  

God’s words of judgment on the serpent, woman, and man are immediately followed by two observations that possibly convey a sense of hope. First, the man names his wife Eve (v. 20), which means “life-giver” (see ESV footnote). Second, God clothes the couple (v. 21). While this final action recognizes that the human couple is now ashamed of their nakedness in God’s presence, as a gesture it suggests that God still cares for these, his creatures. Because God provides garments to clothe Adam and Eve, thus requiring the death of an animal to cover their nakedness, many see a parallel here related to (1) the system of animal sacrifices to atone for sin later instituted by God through the leadership of Moses in Israel, and (2) the eventual sacrificial death of Christ as an atonement for sin.

ESV English Standard Version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57.

 

아담은 앞서 여자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지었다. 나아가 그 책임을 여자에게 전가함으로 그의 비겁함을 드러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절망적이고 슬픈일이지만 이 가운데 우리는 소망의 메시지를 읽게 된다. 20절에서 아담은 그의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앞서 원시복음, 15절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소망을, 믿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여자를 더욱 책망하고 그녀에게 불평과 불만을 쏟아낼만한 상황에 도리어 아내의 이름을 하와, 모든 산자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3:15은 여자의 후손이 사탄을 무찌르고 인간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줄 것을 예고하였고, 이에 대해 아담은 창세기 3:20에서 그 하와에게 모든 산자의 어미라고 불렀다. 아담이 창세기 3:15을 믿음으로 듣고 받아 들였다는 증거이다.52) 디모데전서 2:15는 이런 의미를 잘 반영해 준다.

σωθήσεται δὲ διὰ τῆς τεκνογονίας ἐὰν μείνωσιν ἐν πίστει καὶ ἁγάπῃ καὶ ἁγιασμῷ μετὰ σωφροσύνης

NRS. Yet she will be saved through childbearing, provided they continue in faith and love and holiness, with modesty.

개역.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고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개역 성경은 헬라어 동사 ‘소데세타이’(σωθήσεται, 구원을 얻으리라)의 주어를 여자들로 잘못 번역하였다. ‘소데세타이’는 3인칭 단수이며 주어는 NRS 영어 성경과 KJV 영어 성경이 번역하는 것처럼 she이다. 디모데전서 2:15의 첫 문장 소데세타이 데 디아 테스 테크노고니아스를 이를 반영하여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해산을 통해 여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출산하는 모든 여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출산하지 못하는 여자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말일까? 이 문장에서 ‘그녀’는 누구를 지칭하며 무슨 차원에서 이런 말을 하였을까? 디모데전서 2:13–14을 보면 ‘그녀’는 다름 아닌 하와이다.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렇다면 디모데전서 2:15는 자연스럽게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과 창세기 3:20의 모든 산자의 어미와 관련됨을 짐작할 수 있다. 야곱의 아내들이 자식의 이름을 지으면서 자신의 희망을 담았던 것처럼, 아담은 하와의 이름을 다시 지어주면서 생명과 희망의 빛이 하와를 통해 비추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창세기 1–3장까지 이어진 이름 짓기의 절정에 달한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아담’이라고 불렀고(창 2:7, 5:2),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던 아담은 그의 갈비뼈로 만든 여자를 ‘이사’(אשׁה, 아내, 여자)라고 불렀고(창 2:23), 마침내 창세기 3:20에서 아담은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들이 그의 아내를 통해 나오게 된다는 의미에서 아내에게 ‘하와’(חוה)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53)

52) Derek Kidner, Genesis, 72. Keil, The First Book of Moses, 106. John Collins, “What Happened to Adam and Eve? A Literary–Theological Approach to Genesis 3,” Presbyterion 27–1 (2001): 31–32.

53) Dmitri M. Slivniak, “The Garden of Double Message: Deconstructing Hierarchical Oppositions in the Garden Story,” JSOT 27–4 (2003): 451–452.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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