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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콜슨은 미국의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의 특별고문으로 일했으며 1974년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수감되는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975년 출소 후 교도소 선교회를 조직했고 이는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내 삶에서 진정한 재산은 전과자라는 나 자신의 엄청난 실패, 바로 그것이었다. 교도소 복역 경험이라는 나의 커다란 치욕이 하나님께서 나의 생애를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위한 시작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전혀 영광스럽지 못한 경험을 가진 자를 선택하신 것이다."(38) 

 

이 책의 앞 부분에 한 내과의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래 내용은 그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코른펠드(Boris Nicholayevich Kornfeld)입니다. 그는 내과의사였는데 1950년대 초 스탈린 시절에 정치적인 죄목으로 에키바스트츠에 있는 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수감자이기는 했지만 그는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훨씬 나은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런 오지에는 간수나 수감자 모두에게 의사는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평소 아주 혐오하던 한 간수를 수술하는 과정에서 그의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 간수는 칼에 찔려 동맥이 끊긴 상태였다. 끊어진 혈관을 봉합하면서 코른펠드는 수술 직후에 꿰맨 곳이 바로 다시 터지게끔 특정한 방법으로 혈관을 봉합할 생각을 했다. 그러면 간수는 금세 죽게 될 것이고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이 특이한 복수과정을 상상하며 보리스 코른펠드는 그 간수와 그런 류의 인간들에게 가졌던 자신의 증오심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들을 모두 학살할 참이었다. 생각이 그쯤 이르렀을때 보리스 코른펠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증오와 폭력성에 놀라 전율했다. 그렇다. 그는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증오심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증오심은 코른펠드 자신속에 그칠 줄 모르는 또 다른 증오심을 부화시켰던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악순환인가! 그는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던 바로 그 사악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코른펠드는 간수의 동맥을 제대로 봉합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동료 그리스도인 수감자에게서 들어왔던 말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죄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보리스 코른펠드는 수용소의 의사로서 몹시 고되고 희망없는 작업을 하는 동안 주님의 기도를 반복하며 진실할 그리스도인이 되어갔다. 

 

수용소의 의료부 의사들은 수감자들 중에서 수용소 당국의 비위에 맞지 않거나 혹은 이 수용소 구역에서 쫓아내고 싶은 자들을 좁고, 어둡고, 추운 고문실인 독감방들로 이루어진 처벌동으로 보내기 위한 진단서에 서명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서명이란 해당죄수가 그러한 징벌을 견뎌 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건강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위증이었다. 독감방에 갇힌 수감자중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른 모든 의사들처럼 코른펠드 역시 지금까지 자신의 몫의 진단서에 서명해 왔다. 거부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수용소 당국은 의사의 서명따위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처벌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많은 다른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가 귀하다 해도 당국에 협조적이지 않은 의사들은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코른펠드는 주기도문의 죄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시작한 이후 수감자의 처벌을 합법화시키는 일을 멈추었다. 진단서에 서명한 것을 거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는 그러한 서류 수백장에 서명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가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없도록 막았던 것이다. 이러한 반항은 아주 위험천만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른펠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당번 한 명을 고발한 것이다. 당번은 수용소 당국에 협조적인 수감자 가운데서 차출되었는데 수감자들은 이들을 간수보다 더 미워했다. 당번들은 배신자들이었고 결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수감자들의 음식을 훔쳤고, 누구든지 그것을 보고하거나 따지려 드는 사람이 있으면 손쉽게 죽여 버렸다. 반면 간수들은 당번의 이러한 권력 남용을 눈감아 주었다. 당국은 수용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이런 배반적인 인물들을 필요로 했다. 

어느 날 수용소를 돌던 코른펠드는 펠라그라를 앓고 있는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질병은 영양실조가 원인이었지만 악화되면 음식물을 전혀 소화시킬 수 없게 되고 굶어죽게 된다. 그 환자의 몸은 이병의 끔찍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얼굴은 검어지고 한쪽 볼은 깊게 멍이 들어 있었다. 두 손의 살가죽이 벗겨져 있었고 계속되는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붕대를 감아야만 했다. 코른펠드는 설사를 멈추게 하려고 환자에게 분유와 맛 좋은 흰 빵과 청어구이를 주었고 혈액 속에 영양주사를 놓았다. 

코른펠드가 그 환자를 곁을 떠난 직후였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펠라그라 환자용 흰 빵을 훔쳐먹고 있는 한 당번과 마주쳤다. 그는 입안에 빵을 잔뜩 문채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코른펠드를 올려다 보았다. 코른펠드는 환자용 급식이 도난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환자들이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라는 것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라 그 당번병을 고발하였다. 

코른펠드가 당번의 비리에 대해 수용소장에게 보고서를 냈을 때 수용소장은 그 고발을 퍽 흥미로워했다. 최근 수용소에 연이은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피살자들은 모두 고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서 누군가에 대해 고발한다는 것은 위험스럽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수용소장은 코른펠드이 고발을 접수하고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해당 당번을 사흘간 처벌동으로 보내도록 조치했다. 수용소장으로서는 코른펠드가 죄수 처벌용 진단서에 서명해 주지 않는 것이 항상 골칫거리였는데 이번 사건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의사는 자신의 무덤을 판 것이다.

보리스 코른펠드는 특별히 용감한 사람은 아니었다. 자신이 고발한 그 당번이 처벌동에서 풀려나는 즉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알고 있었다. 수용소에서 뽑은 당번들에 의해 통제되는 막사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확실한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서 머물면서 짬이 날 때 적당한 곳에서 틈틈히 잤다. 그는 어느 순간이 그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불안 속에 지내는 그에게 엄청난 자유가 찾아왔다. 죽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자 삶에 대해 자유로와졌다. 그는 더 이상 수감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서류나 진단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수용소 내에서 일어나는 가혹행위나 불법을 외면하거나 방종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했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얼마 안가서 그는 자신의 영혼에서 분노와 증오, 폭력성이 사라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자유함을 알고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자기 말고 또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보리스 코른펠드는 자신이 발견한 순종과 자유함의 새로운 삶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느 흐린 오후 그는 대장암 수술을 마친 환자 한 명을 검진하고 있었다. 멜론처럼 생긴 머리와 고통스러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한 이 청년은 코른펠드의 영혼을 흔들었다. 청년의 눈은 슬픔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이미 수용소에서 보낸 오랜 세월이 깊게 새겨져 있는 그의 얼굴은 코른펠드가 이전에 보지 못한 깊은 영적 곤고함과 공허감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코른펠드는 이 환자에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환자는 마취약 기운 때문에 잠이 들었다 깼다 했으므로 이야기의 첫 부분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의사 코른펠드의 열정이 환자의 정신을 집중시켰고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의사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의사는 그날 오후 내내 그리고 밤늦게까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과 새로 발견한 자유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환자는 믿을 수 없이 놀라운 고백을 자신이 듣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술후의 통증이 몹시 심했고 뱃속은 녹은 납덩이가 누르듯 무겁고 아팠지만 그는 잠이 들때까지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젊은 환자는 수술실의 술렁거림과 다급한 발자국 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가장 먼저 어젯밤의 그 의사를 떠올렸지만 그의 새로운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 동료 환자가 코른펠드의 운명을 그에게 귓속말로 전해주었다. 

전날 밤 코른펠드가 잠든 동안 누군가 그에게 몰래 다가가 미장공의 망치로 그의 머리를 여덟 번이나 내리쳤다는 것이다. 동료 의사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아침이 되자 머리가 깨진 코른펠드의 시신을 당번들이 싣고 나갔다. 

그러나 코른펠드의 고백은 죽지 않았다. 젊은 환자는 그 의사의 열정적인 마지막 말들을 생각했다. 그 결과 그 역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자신이 그곳에서 깨달은 것을 전 세계에 말하게 되었다. 그 젊은 환자의 이름은 알렉산더 솔제니친이다. 

 

보리스 코른펠드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역설을 삶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조상의 신앙을 배신한 유대인이다. 여러 해 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무의미하게 낭비한 의사이다. 정치적 이상주의자로서 그의 유토피아의 꿈은 황량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묻혀져 갔다. 한덩이의 빵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고발하여 겨우 그것 때문에 생명을 잃은 사람이다. 이 모든 면에서 보리스 코른펠드는 인생의 실패자였다. 적어도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한사람의 실패, 그의 순전한 순종을 취하셔서 그를 전 세계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발하며 당대에 최고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가 될 인물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데 사용하셨다. 

 

코른펠드이 말은 후에 솔제니친이 “민감한 현악기의 음률”이라고 부른 것처럼 솔제니친을 감동시켜 회개와 확신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솔제니친을 영적으로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만유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비록 나는 당신을 부인했었지만 당신은 나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작품 「수용소 군도」에서 외쳤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에 따라 한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생명이 전이되는 영적인 수혈이었다. 

코른펠드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짧은 생애는 고립되고 제한되어 있는 환경에서 지낸 것이 전부이다. 여러모로 보아 그가 진단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일, 부패한 당번을 고발한 일, 중태 환자에게 몇 시간씩 자기의 신앙을 고백한 일들은 모두 열매 없는 무익한 일 같고, 오히려 난폭자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만든 부질없고 어리석을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코른펠드의 신앙은 강하고 확실하며 진실한 것이었다.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과 성령님은 그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해주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순종하는 것, 믿음안에서 순전한 순종이었다. 

 

바로 이 한 사람 코른펠드의 작은 날갯짓이 알렉산더 솔제니친이라는 한 사람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솔제니친을 통해 세계는 억압받는 러시아의 상황을 모두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여러분의 날갯짓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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