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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의 선교(크리스토퍼 라이트, IVP)

 
이전이 책 ‘하나님의 선교’는 성경 전체에 대한 선교적 해석학에 관한 내용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 성경 전체를 통합해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 백성의 선교’에서는 하나님이 구원과 및 자신과의 언약관계로 부르신 이들이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이 주된 질문은 ‘신구약에 걸쳐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이 세상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가?’이다. 
 
서론 
((교리*역사적 신앙고백)/교파적 차이 + 이단의 의심) - 교리 = ? (신학과 선교가 공통으로 지닌 부분)
 
신학과 선교의 관계 : 신학은 선교로부터의 입력과 출력 없이 진행되는 반면, 선교는 신학의 안내나 평가 없이 진행될 위험이 있다. “신학과 선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신학은 교회의 선교와 관련없는 신학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학은 교회의 선교 속에서 생산되어야 하며, 교회의 선교에 영감을 불어넣고 선교의 틀을 제공해야 한다. 교회의 선교는 성경의 토양에 깊이 신학적 뿌리를 내리고 수행되어야 한다. 선교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신학은 신학이 아니다. 신학적 기초가 없는 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1부. 인생 최대의 물음
 
1장.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1. 선교인가, 선교 사역인가
1) 하나님의 보내심 : 선교(mission)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근에는 보내고 보냄받는다라는 개념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위해 보냄을 받는 것인가? (요셉, 엘리야, 예레미야, 예수님, 제자, 바울과 바나바, 디도, 아볼로, 수많은 익명의 형제자매들)
2) 하나님의 목적 :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mission, 사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는 이들은 실제로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 선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서, 그분의 마음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선교는 세계적인 하나님의 세계적인 백성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3) 단수와 복수 : 선교(mission)라는 범주 아래에 다양한 선교 사역(missions)을 포함시킬 수 있다. 
- 과학(science)와 과학 활동(sciences), 예술(art)와 예술 활동(the arts), 스포츠(sport)와 스포츠 활동(sports) 
- 하나님의 선교 사역에는 수많은 종류들이 있다. 한 종류의 선교에 대한 우월 의식이나 열등 의식은 건강하지 않다.(청년-어린이 선교, 빈민 선교, 문화 선교…)
 
2. 온세상
1) 하나님의 선교 목표인 온 세상
2) 우리의 선교 영역인 온 세상
3) 우리의 선교 무대인 온 세상 : 성속의 구분, 일의 세계, 공적 영역, 사업, 교육, 정치, 의료, 스포츠 세계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 백성의 선교 무대인가? 이 세계에서 전도하는 것만이 선교인가? 우리의 일 자체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될 수 있는가? 
- ‘온 세상’이라는 단어는 지리적,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이다. 
 
3. 온 교회
1)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 신약에서의 교회의 선교는 구약 이스라엘의 정체성 및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신약 교회는 세계 선교의 과제를 수행할 때 실제로 신약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 전체가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정확히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 사명을 가진 백성인지 주의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2) 우리는 어떤 종류의 백성인가?
- 우리이 선교가 좋은 소식을 나누는 것이라면, 우리는 좋은 소식의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복음은 단지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3) 우리 선교의 우선순위와 한계는 무엇인가?
- 교회의 선교는 일차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가? 언어적 요소가 정말로 중요한 전부인가? 교회의 선교는 삶과 행동으로 그 메시지를 구현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할 때 이 문제는 선포(proclamation)과 현존(presence)간의 긴장으로 나타난다. 또는 말(words)과 행위(works)간의 긴장으로 나타난다. 이는 교회가 말해야 할 것과 되어야 할 것의 통합의 문제이다. 
 
4. 온전한 복음
1) 당신의 복음은 얼마나 큰가?
우리 선교의 핵심인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의 구속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에 관한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복음을 개인적인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천국 문을 통과하게 해주는 전자카드 정도로 축소시키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은 이를 교정해준다. 
2) 다른 이름은 없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의 유일성에서 나오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유일성 안에서 우리에게 최고로 계시되었다. 이것이 우리 선교의 근원이며 또한 우리 선교의 내용이다. 다른 이름은 없다.(행 4:12)
 
 
2부 우리가 찾은 대답들
2장. 자신이 속한 그 이야기를 아는 백성
1. 세계 선교와 성경 이야기
많은 이들이 선교를 대위임령에서 시작하지만 실제 주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제자들이 교회의 선교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신약성경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또한 당시의 다른 종교나 철학들이 대답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약간의 진실일 뿐이다. 예수님의 최초 추종자들은 유대인들이었다. 
1) 그 이야기 알기
최초의 신자들은 자신이 속한 그 이야기, 구약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행 15장의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사건으로인해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위임령을 언급함으로 해결한것이 아니라 아모스 9장을 인용함으로 예언서의 그 이야기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바로 그날 오후와 저녁에 구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셨다. 
2) 메시야와 선교
첫번째 강의는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구약 정경 전체를 들어서(모세와 모든 예언자의 글로) 그 모든 것이 어떻게 메시아이신 그분을 가리키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실상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는 방법이 되는지 설명하셨다.(눅 24:13-27)
두번째 강의는 구약이 이끄는 곳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눅 24:44-48)
구약은 예수님께로 이끌 뿐만 아니라 열방 선교로 이끄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2. 그 이야기를 전체로 보기
이 책은 ‘교회의 선교를 위한 성경신학’을 추구한다. 
 
성경이야기의 네가지 중요 부분(창조, 타락, 역사속의 구속, 새 창조)
 
1) 창조
성경은 단순히 우리의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심판 날에 살아남는 방법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은 창조에서 시작해서 새 창조로 끝난다. 창조는 세계관의 기초 질문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2) 타락
인간이 불순종과 반역은 하나님 창조세계의 모든 면과 인간성과 지상에서의 삶의 모든 차원에 영향을 미친다. 육체적으로 부패와 죽음, 지적으로 인간이 지닌 합리성의 능력을 자신의 악을 설명하고 변명하고 정상화하는데 사용하며 사회적으로 모든 관계는 분열된다. 또한 영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며, 그분의 선하심과 권위를 부인한다. 
 
3) 구속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세계를 포기하거나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구속하기로 선택하셨다. 아브라함의 부름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역사안에서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하셨다. 
- 구약 : 아브라함, 출애굽, 시내산 율법, 가나안 정착(사사시대-군주시대), 예언자들 / 하나님은 역사적 이스라엘의 실패를 예상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신약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성육신은 선교 신학에 두가지 새로운 요인을 제공하는데 첫째는 도래한 하나님 나라이고 또한 둘째는 성육신의 모델과 원리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활동과 그분의 제자들의 선교는 삶과 가치와 우선순위를 변화시켰으며, 타락한 사회의 권력 구조에 급진적인 도전을 제기했다. 출애굽 구속이 구약의 이스라엘을 언약 백성으로 만들어 내었듯이, 부활절 구속은 오순절 성령이라는 종말론적 선물을 만들어 내고 교회를 탄생시켰다. 
우리의 선교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두가지는 바로 성령의 존재와 교회의 존재이다. 
 
4) 새 창조  
심판의 실재는 복음의 일부로 악이 최종 발언권을 갖지 못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파멸될 것이라는 좋은 소식이다. 
- '엄마 오신다’ 게임(시 96편-하나님이 오신다)
선교는 그 원대한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하나님이 보장하신 이야기의 절정에 이를 때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창조는 우리에게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와 원리를 제공한다.
• 타락은 저주받은  땅의 현실과 인간  사탄의 사악한 마수 속으로 우리를 떨어뜨린다.
구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속 목적의 범위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특정한 사와 문화적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구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그리고 기쁘시게 하지 않는) 실제 반응의 종류를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율법, 이야기예언자들, 지혜서와 이스라엘의 예배를 통해) 보여 준다.
성육신은 몸부림치며 싸우는 우리 바로 옆으로 하나님을 모셔 온다. 그리고 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고 대행하는 대리인이 것을 요구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참된 화해와 사랑과 소망과 평화의 능력을 경험하고 공유하게 한다. 또한 도저히 구속받을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속죄와 구속의 사역을 추구하게 해준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인도와 힘을 공급하심으로써 우리가 일상생활과 사회 속에서 참된 변화를 기대할 있게 한다· 그와 함께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단순히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에 시선을 고정시키게 해준다.
창조의 원대한 희망은 현재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안에서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희망은 이미 드러난 미래의 모습으로 인해 현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형성한다.
 
3.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는 타락하고 죄악된 창조세계를 새 창조의 구속받은 세계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이 오늘날 복음을 거부한다. 복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찮은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통합된 세계관을 찾고 있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교리 없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며, 창조 없이 십자가를, 또는 심판없이 구원을, 또는 정반대로 구원없이 심판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운다. 오늘날의 세계는 더 큰 복음, 성경에 기록된 온전한 복음, 바울이 나중에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경륜’(the entire plan of God)이라고 부른 것을 필요로 한다.” - 존 스토트 행 17장 설교중에서
 
성경 전체에서 교회의 선교에 대한 성경 신학을 끌어낼 수 있으며 끌어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할 때 하나님 백성의 선교가 방대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3장. 창조세계를 돌보는 백성
성경은 창조에서 시작해서 창조로 끝난다. 문제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창세기 3장에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끝나는 것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의 이야기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악과 죄로 황폐해지는 우주를 보시고 모든 창조세계를 완전히 구속하고 회복하기로 결심하셨으며,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것을 미리 성취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 새 창조세계에서 영광스럽게 완성하실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래의 창조와 새 창조라는 두개의 큰 기둥사이에서 성경은 창조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1. 정복하고 다스리라-섬기고 보존하라 : 창세기 1-2장
태초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으로 창조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해야할 것을 명령하셨다. 
1) 창조세계의 왕 : 창세기 1:26-28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창조세계를 통치하길 원하셨다. 땅을 정복하고(카바스) 나머지 피조물을 다스리라(라다)라고 하셨다. 땅을 정복하라는 농사짓는 일과 관련이 있고 다스리라는 단어는 피조물을 지배하는 인간의 책임을 묘사한다. 고대의 왕과 황제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영토의 멀리 떨어진 구석에 자신의 형상을 세웠다. 그 형상은 왕의 권위를 나타낸다. 시편 145편에서 창조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는 지혜, 능력, 은혜, 자비, 신실함, 관대함, 공급, 보호, 정의 및 사랑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왕권의 특징과 가치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폭군이 아니라 선한 왕이 되어야 한다. 
2) 창조세계의 종 : 창세기 2:15
경작하다(아바드)라는 단어는 섬기다라는 의미이다. 지키다(샤마르)라는 단어는 어떤 것을 안전하게 지키다라는 의미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환경을 섬기고 돌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땅을 다스리는 요점이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땅의 유익을 위함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하여’가 되어야 한다. 그 예배와 섬김의 첫 번째 요소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이다. 
인간이 왕으로서 나머지 피조물을 다스리는 것은 비인간 피조물(말 못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성경적인 정의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잠 31:8-9)
 
2.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위해, 영원히
1) 창조세계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모든 피조물(생물과 무생물)은 이미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세계를 돌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목적에 동참하는 것이다. 
2) 인간의 삶과 창조세계는 완전하게 결속되어 있다.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아담’이다. 지면 또는 흙을 뜻하는 단어는 ‘아다마’이다. 
땅은 우리에게 제공한다. 또한 땅은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는다. 
2) 하나님의 구속은 창조세계를 포함한다. 
우리는 창조세계 바깥으로 구속받는 것이 아니라, 구속된 창조세계 자체의 일부로서 구속받는 것이다.(사 65:17-25)
 
3.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선교이며 십자가의 의미였다. 그렇다면 창조는 그중 어디에 위치하는가?
1) 만물이 십자가를 통해 화해되었다. (골 1:15-23)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가 죄인뿐만 아니라 창조세계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수단이다.(골 1:20)
개인 → 교회 → 세상 → 천국.  이것이 우리의 궤도인데 이 안에는 이원론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바울은 창조세계에서 시작한다. 
2) 모든 창조세계를 위한 좋은 소식
우리의 선교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에도 좋은 소식을 전한다.(롬 8:19-23)
결론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를 돌보는 것이다. 
 
4. 요약
그리스도인들은 친환경적인 방식(환경 보호, 지구 온난화를 대처)으로 살아내고, 생태학적 선교(피조물 돌보기, 서식지 보존등)를 고민해야 한다. 
 
 
4장. 열방에 복이 되는 백성
1. 열방 가운데서 믿음의 순종
바울의 복음 사역은 육체적으로 아브라함에게서 유래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열방에서 아브라함을 닮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2.  창세기 1-11장의 암울한 맥락에서 살펴본 아브라함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다. 이로 인해 창조세계 안에 확립된 모든 관계가 철저히 깨진다. 이후 점차 커지는 인간의 죄에 상응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가 거듭해서 나타난다. 뱀의 머리는 상하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이 주어진다. 가인은 보호를 받고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피조물을 언약 아래서 보존된다. 창조세계는 인간의 죄의 무게로 쩔룩거린다. 
창세기 1-11장에서 생생하게 전개된 문제들은 사람들이 죽을 때 하늘나라에 가는 길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 저주가 제거되고 생명나무로 이르는 길이 열리려면, 죽음 자체가 멸망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완수하기 위해 창 12장에서부터 계 22장까지 성경 이야기의 나머지 전체가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삶을 선교 전체의 발사대로 삼으신 것이다. 
 
3.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놀라운 소식 - 열방을 위한 복
창 12:1-3에서 복을 주다와 복이라는 단어(바락)가 다섯 번 나타난다. 이제까지 죄와 반역으로 심판과 저주로 기울어져있던 상황에서 복음 말씀하신다. 
1) 복과 창조세계의 선함
창 1장에서 하나님은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시고, 여섯째 날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 그리고 일곱째 날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 이처럼 창 1장의 복은 생육함, 풍성함, 충만함을 누리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거룩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바탕으로 창조세계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창 12장의 복은 수직적인 면에서 볼 때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속에서 사는 것이다. 한편 수평적인 면에서 볼 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뻗어 나간다.(라반과 야곱, 보디발과 요셉, 바로는 야곱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복은 자기복제를 하는데 이는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2) 역사 속의 복과 희망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복이 퍼져 나가는 역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역사다. 
3) 복, 구원, 순종
구원의 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언약적 순종의 반응이 필요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서 복이나 구원이 순종을 통해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인 실수다. 그와 반대로, 복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의해 확립된 언약 관계에 기초한다. 그렇다면 순종은 복을 얻거나 받을 자격을 갖추는 방법이 아니라 복의 영역안에 살면서 그 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4. 아브라함 : 하나님의 선교와 우리의 선교
1) 하나님의  보편적 선교 : 모든 열방(창 12:3; 18:18; 22:18; 26:4; 28:14)
2) 하나님의 특정한 수단 : 한 나라
한 나라가 선택 받지만, 모든 열방이 그 선택의 수혜자가 된다. 결국 그 한 나라가 한 사람, 메시아 예수에 의해 대표된 것이며, 그분을 통해 모든 열방에 하나님의 구속적 복이 임할 것이다. 
3) 선교를 위한 선택
한 사람을 선택함은 나머지를 거부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을 위한 선택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모든 열방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다. 
4) 선교적 교회
아브라함의 후손은 누구인가? 예수를 메시아요 구세주로 믿는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씨에 포함되며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상속자다. 이처럼 교회는 아브라함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선택받고 부름받은 백성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을 확산시키는 사명을 받는다. 
창 12장의 내용은 마 28장의 대위임령과 같다. 
선교적이 아니라면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5. 성경신학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메아리
1) 이스라엘의 예배와 구원 앞으로 나아오는 열방
시 22:27-28; 47:9; 67편; 72:17; 86:9; 87편; 96편; 102:15, 21-22; 117편
사 19:19-25; 45:22-23; 56:3-8; 60장; 렘 4:1-2; 암 9:11-12; 슥 2:10-11
2) 복음서에 나타난 아브라함
눅 13:10-16; 16:19-31; 19:1-10; 행 3:1-26
3) 바울의 복음에 나타난 아브라함
바울의 복음 신학과 선교 신학은 둘 다 아브라함적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단순히 유대인이 아니라 모든 열방이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복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심으로써 아브라함에 대한 그분의 약속을 지키시고 그분의 의와 신실하심을 나타내셨다. 
4) 요한계시록에서 성취된 선교
계 5:9-10; 7:9-10; 22:2
 
6. 우리의 선교 모델인 아브라함
1) 떠나감-‘너희는 가서’
2) 믿음과 순종
 
7. 요약
‘우리는 누구이며(아브라함의 자손),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하나님의 약속된 선교에 참여)’ 우리는 사도행전으로 시작하는 대신에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인간의 죄와 반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가 작동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복을 가져오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물려받는다면 아브라함의 사명 또한 물려받는다. 가서 복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5장.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백성
1.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말씀
하나님이 이 백성,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열방이라는 역사적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그 선교를 수행하는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창 18:19)
(창 18:19, 개정)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아브라함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에게 부과하신 책임을 상속할 자이다.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위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의 도리는 윤리적 기준에 따라 사는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시고 열방에 복을 가져다주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윤리와 하나님의 선교는 완전하게 묶여 있다. 
 
2. 소돔 : 우리가 사는 세상이 모델
1) 열방의 불순종
소돔은 타락한 세상의 방식을 나타낸다. 창 18:20의 ‘체아카’, 부르짖음이라는 단어는 억압이나 침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스런 외침 혹은 도움을 바라는 외침을 뜻하는 전문 용어이다. 소돔의 죄는 왜곡되고 폭력적인 성적 부도덕(창 19장), 고삐 풀린 우상 숭배(신 29:23), 유혈 사태와 부패와 불의(사 1:9-23), 교만과 냉담함(겔 16:48-50)로 표현된다. 이처럼 소돔은 억압, 학대, 폭력, 왜곡된 성, 우상숭배, 교만, 탐욕스러운 소비가 가득 찬 곳이었으며 궁핍한 자들에 대한 자비나 돌봄이 없는 곳이었다. 
2) 열방 가운데서의 순종
바울의 선교는 믿음과 순종의 공동체, 소돔의 도를 행하는 열방의 세계에서 야워의 도를 행하는 데에 헌신한 공동체, 주변에 있는 모든 소돔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변화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열방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도를 행해야만 한다. 
 
2. 아브라함 : 하나님 선교의 모델
1) 임박한 심판 : 궁극적 축복
당장 필요한 것은 심판이었다. 하지만 궁극적-보편적 목적은 (언제나 그랬듯이) 축복이다. 
2) 세상을 위한 약속
천사들이 길을 멈추고 아브라함과 식사를 한 이유는(창 18:2) 이 노부부에게서 역사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 목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야웨의 도 : 하나님 백성의 모델
핵심 구절인 창 18:19속에서 우리는 선택과 선교 사이에서 윤리를 발견하게 된다. 
1) 윤리 교육
야웨의 도를 행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뒤따르거나 어떤 사람의 설명을 따라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 10:12-19과 미 6:8은 율법 전체를 경외하라, 행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순종하라는 다섯 가지 단어로 요약한다. 
야웨의 도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른 이들에게 해주시고 싶으셨던 것을 그들에게 해주는 것, 좀더 상세히 말하면 하나님이 이미 이스라엘에게 해주신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가서, 그와 같이 하라. 
2) 의와 공도를 행함
⓵ 의 : 체다카, 어원적 의미는 ‘곧다’이다. 고정되어 있고 마땅히 되어야할 모습을 하고 있는 어떤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규범이나 기준을 의미할 수 있다. 의는 특정 환경과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하는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다. 
⓶ 공도 : 샤파트(미슈파트), 광범위한 법적 활동으로 입법자로 활동하는 것, 분쟁중인 당사자들을 중재하는 재판관으로 활동하는 것, 누가 유죄이고 무죄인지 선언함으로써 심판을 선고하는 것등을 포함한다. 넓게 보면 바로 잡다, 잘못되었거나 억압적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개입하여 고치다라는 의미이다. 
‘미슈파트’는 사람과 환경이 ‘체다카’에 따라 회복되기 위해,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슈파트’는 일련의 행동들, 즉 당신이 해야하는 그 무엇이다. ‘체다카’는 일의 상태, 즉 당신이 이루고자 목표하는 그 무엇이다. 
이 두 단어는 함께 어울어져서 더 강력한 의미를 지닌다. 아브라함은 이 야웨의 도를 배우고 가르쳐야했다. 그는 어떻게 이것을 배울 수 있었는가? 
소돔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게서 억압당하는 이들의 고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셨다.(부르짖음-체아카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또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셨다. 
3) 선교적 논리
창 18:19은 선택의 이유를 설명하는 동시에 윤리적 삶의 목적을 설명하는, 근본적으로는 선교적 선언이다. 특히 윤리가 선택과 선교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윤리는 선택의 목적이자 선교의 기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그것을 윤리적으로 나타내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공동체가 실제로 존재함으로 인해 열방에 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선교가 실현될 것이다. 
 
창 18:19을 선교적 논리에 따라 읽으면 다음과 같다. 뒤에서 부터 읽으면 
- 하나님의 궁극적 선교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열방 복을 가져오는 (선교).
- 그것은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의와 공도 가운데 야웨의 도를 따라 살도록 가르침 받을 공동체가 세상에 존재함으로(윤리)
-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어떻게 생겨날 것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창시자가 되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에(선택).
앞에서 부터 읽으면
- 아브라함은누구인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인격적 우정의 관계를 맺으신 사람 (선택).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는가? 소돔의 길을 따라가는 세상에서 야웨의 와 그분의 의와 공도에 헌신할 백성을 만드시기 위해(윤리).
- 무슨 목적이 있기에 아브라함의 백성은 그처럼 높은 윤리적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열방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실 있도록(선교)
 
하나님 백성의 삶의 윤리적 특성은 그들의 부르심과 그들의 선교를 연결시키는 중대한 연결 고리이다. 성경적 윤리 없는 성경적 선교는 있을 수 없다. 
 
4. 요약
분열되고 찢어지고 싸우는 교회는 분열되고 깨어지고 폭력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거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야웨의 도를 행하지 못하거나 진실, 정직, 정의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개인적 관계를 망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6장. 구속적 삶을 살도록 구속받은 백성
Are you redeemed? 당신은 구속받았습니까? 혹은 포인트를 사용하겠습니까? 
이 장을 통해서 첫째, 구속 경험이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의미했으며 그 위대한 구약 이야기가 어떻게 십자가 성경 신학을 위한 기초가 되는지, 둘째,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의 삶과 신앙에 얼마나 깊고 넓게 영향을 끼쳤는지, 셋째, 사명을 가지고 구속적으고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을 것이다. 
 
1. 하나님의 구속을 경험함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구속자로 행동하셨고 출애굽 사건 자체가 구속 행위로 불린다. 출애굽은 신약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취를 해석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1) 구속자 :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하는 친족의 대변자
- 구속하다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되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히브리어 동사로는 가알’, 명사로는 ‘고엘’이다. 이 단어는 친족 보호자, 가족 수호자로 번역된다. 
⓵ 살인자를 재판에 회부함(민 35:6-34)
⓶ 가족이 빛이나 종노릇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줌(레 25장)
⓷ 형제의 이름을 보존함(신 25:5-10; 룻 3:9-13)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고 옹호하고 해방시키기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하시고, 얼마의 비용이 들든 지불하실 각오가 되어 있으시다. 
2) 출애굽 : 노예화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구출
⓵ 정치적 차원 : 거대 제국안에 있는 이민자, 소수 인종. 정치적 노에 상태의 종식
⓶ 경제적 차원 : 그들에게 땅을 주는 것
⓷ 사회적 차원 : 애굽의 경제적 착취와 국가 주도 학살로부터 이들을 보호하여 새로운 사회를 출범
⓸ 영적 차원 : 노예로 섬기는 것과 예배를 드리는 것 모두 ‘아보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출애굽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출애굽은 노예 상태에서 자유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 상태에서 언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3) 출애굽 : 총체적 모델
출애굽의 동기는 이중적인데 첫째는 잔인한 억압 아래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어린 관심, 곧 정의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 때문이고 둘째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출애굽 형태의 구속은 출애굽 형태의 선교를 요구한다. 
4) 십자가 : 적대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구약과 신약에서 구속은 하나님이 그분 백성의 위대한 대변자로 활동하셔서, 전능한 힘을 행사하시고, 그 백성을 적대하고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비용 일체를 지불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2. 하나님의 구속에 반응하다. 
1) 기뻐하도록 부름받음
구속을 기뻐하는 것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공동적이고 또한 명령으로 부과된 의무였다. 
“당신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올바를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의무이며 우리의 기쁨입니다.”(영국 성공회 성만찬 기도문 중에서)
2) 본받도록 부름받음
구속받은 이스라엘은 야웨께서 그들의 신적 ‘고엘’로 행동하도록 만들었던 것과 동일한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 고엘의 중요한 자격 조건 : 대가를 지불하는 긍휼, 정의에 대한 헌신, 배려하는 관대함, 구속적 결과를 낳는 행동
3) 노예 해방(신 15:1-18)
4) 관대함 
5) 구속과 희년(레 25장)
6) 용서와 빚
빛을 탕감받는 기쁨을 누린 자는 기꺼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 구속의 경험은 구속적 삶을 낳아야 한다. 
 
3. 사명을 띠고 구속적 삶을 살기
출애굽은 개인적 죄사함의 영적 차원과 더불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심 및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교 신학들을 취한 탁월한 성경적 근거로 간주되어 왔다. 출애굽은 성경적 복음의 포괄적인 좋은 소식 안에 이러한 모든 차원을 통합시키는 성경적 기초다.
1)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음
‘모든 기독교 선교는 십자가에서 나온다. 십자가가 선교의 근원과 능력이며 선교의 범위를 결정한다.’
- 십자가 안에서만 최책을 지닌 죄인을 위한 용서, 칭의 및 깨끗하게 함이 있다. 
- 십자가 안에서만 악한 권세를 격파할 수 있다. 
- 십자가 안에서만 사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사망이 궁극적으로 멸망한다. 
- 십자가 안에서만 가장 다루기 어려운 원수까지도 화해시킬 수 있다. 
- 십자가 안에서만 우리는 마침내 모든 피조물이 치유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2) 출애굽 및 희년 공동체로서의 교회
우리는 십자가를 출애굽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십자가를 출애굽의 성취로 본다. 
 
4. 요약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능력을 이미 경험한 자로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모든 형태의 억압과 노예 상태로부터 모든 창조세계와 인류의 궁극적인 해방을 가리키는 이정표다. 
 
 
7장.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대표하는 백성
1. 그 이야기를 기억함
1)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이야기(출 19:3-6)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한 부분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믿는 그 이야기에 달려 있다. 
2) 이제까지의 이야기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출 19:3-6은 이스라엘에게 정체성, 역할, 세상 속에서의 사명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특권및 책임감도 함께 제공했다. 
 
2. 과거의 은혜 : 하나님의 구원 - 출 19:4
(출 19:4, 개정)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율법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것에 대한 믿음이 행동으로 드러난 반응이다. 
 
3. 미래의 은혜 : 하나님의 선교 - 출 19:5b
(출 19:5, 개정)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1) 특별한 백성, 그러나 유일한 백성은 아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특정한 한 민족을 속박에서 구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열방에 구원을 제공하시는 것이었다. 
2) 미완성 과업
우리는 하나님이 속박과 좌에서 구속하신 백성이며(과거) 하나님이 땅의 모든 열방에 복을 전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백성이다.(미래)
 
4. 현재의 은혜 : 하나님의 세상에 있는 하나님 백성 - 출 19:6
(출 19:6, 개정)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을 제사장이 되고 거룩해져야 했다. 
1) 제사장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의 중간에 서서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백성의 제물을 드렸다. 또한 제사장들은 사람들을 축복하는 일을 한다. 이는 구심적, 원심적 기능을 포함한다. 
복음전도는 제사장적 과제다.(벧전 2:9-12)
2) 거룩 
거룩이라는 단어, ‘카도스’는 다르거나 구별된다는 뜻을 지닌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독특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어 그 목적을 위해 불=ㄴ리된 상태로 있을 때 거룩하다. 
⓵ 거룩함 : 주어진 사실(레 20:26)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은혜로 ‘거룩하도록’, 곧 그분 자신을 위해 구별되도록 선택하신 사람, 성도이다. 
⓶ 거룩함 : 주어진 과제(레 18:3-4)
다르게 행동하는 것, 이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우리의 소명이다. 
⓷ 거룩함 : 삶의 전 영역에서(레 19장)
이스라엘은 열방과 같기보다는 야웨와 같아야 했다. 이스라엘은 열방의 신들과 다른 하나님을 예배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실제로 개인적-사회적 삶의 모든 차원에서 다르게 살고 행동했다.(마 5장. 빛과 소금) 선교의 필소 요소는 우리의 존재 방식이다.  
⓸ 언약 순종
제사장이 되고 거룩해지는 열쇠는 순종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 일 때문에 순종하도록 요구받는다. 하지만 순종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5. 요약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구약이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과거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구악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미래의 은혜에 의해 전진하는 선교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려는 사람들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그 은혜에 응답하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가운데 보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거짓 신들의 타락한 추함 및 무력함을 대조적으로 나타내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는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출 19:4-6을 상기시키며 벧전 2:9-12에서 ‘열방 가운데서 선한 삶을 살라’라고 말했다. 
 
 
8장.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끌어들이는 백성
하나님 백성의 선교는 미용(코스메오)이다. 코스메오는 사람이나 물건을 장식해서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딛 2:9-10)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지금까지의 부분은 후자를 강조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을 정말로 그들의 존재 및 행동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하는 것이다. 
 
1. 호기심을 불러일으킴 - 신 4:5-8
(신 4:5-8, 개정) 『[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1) 볼 수 있음
이스라엘은 세상 한 복판, 세 대륙(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한복판에 살았다. 

 

하나님 백성의 경계 너머에 있는 자들이 무언가를 볼 수 있어야만 했다. 선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메시지를 전하는 자는 그 메시지에 의해 자신이 변화되어야만 한다. 귀에 들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눈에 보여야만 한다. 
2) 비교할 수 있음
‘이보다 더 나은 것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구약 율법은 공개적 조사 및 비교를 권하며 심지어 환영한다. 
‘메시지 담지자의 성품과 행위’안에 진실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3) 도전할 수 있음
우리의 선교는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이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과 우리가 사는 삶에 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끄는 것은 우리의 삶이다. 
우리의 경계너머의 열방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볼 것이다. 
 
2. 모여드는 구도자들 - 왕상 8:41-43, 60-61
1)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14-21절) 
솔로몬의 통치시기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다. 큰나라가 되었고 풍부한 복을 주셨고 약속하셨던 그 땅에서 안전을 제공받았다. 
2)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이방인(41-43절)
성전의 기도에서 놀라운 개방성, 긍휼, 비전이 담겨있다. 
⓵ 가정
솔로몬은 다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평판을 들을 것을 가정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의 응답을 구할 것을 가정하며, 하나님이 외국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기를 원하실 것이라고 가정한다. 
⓶ 내용
솔로몬은 예수님보다 훨씬 오래 전에, 오직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들을 위해 구한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도 보장하지 않았던 약속을 이방인들을 위해 해 달라고 구한다. 
⓷ 동기
그러면 하나님은 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하는가? 하나님이 이방인의 기도에 응답하셔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 자신의 평판이 더욱 멀리 퍼져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선교의 가장 큰 동기는 주의 이름이 땅끝가지 알려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동기라면 우리의 태도와 실천 또한 그 동기와 일치할 필요가 있다. 
3)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백성(60-61절) 
(왕상 8:60-61, 개정) 『[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3. 감탄할 만한 매력 - 렘 13:1-11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입기 원하신다.(이름, 명예, 영광)
이스라엘이 열방 중에서 어떤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받게 되든, 그것을 실제로 야웨, 곧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입고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입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기 원하셨는데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마치 여러달 동안 옷을 젖은 흙속에 넣어 둔것과 같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가져다주기는 커녕 수치와 모욕을 가져다주었다. 
 
4. 열방이 예배로 나아옴 - 사 60장
이사야 60장은 빛으로 시작해서 빛으로 끝나는 장이다. 
1)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오신다.(1-2절) 
2) 세상이 하나님께 나아온다.(3-16절)
⓵ 열방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나아온다.(4, 9절)
⓶ 열방이 선물을 갖고 온다.(5, 9, 11절)
⓷ 열방이 예배하며 나아온다.(6, 7, 9, 13절)
3) 세상에 평화가 온다.(17-22절) 
 
5. 사람들의 인정을 받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눈에 잘 보이는 매력적인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 빛은 선행으로 이루어진다. 또 그 윤리적 빛의 특성은 사람들을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로 끌어들여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행 2:44-47, 빌 2:14-16)
 
우리가 복음을 단순히 선포하기만 하면 복음은 가시성이 부족하다. 복음을 선포하는 우리가 영혼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의 육체, 상황, 공동체의 복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복음은 신뢰성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복음에 부족할 가시성이나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긍휼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사랑을 그 자체를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필요를 볼 때마다 그저 섬긴다. 
 
6. 요약 
교회의 전도 사역은 세상을 위해 구세주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인데, 로마 황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 내용이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예들의 삶과 행위에 변화가 있어야 했고 그랬기에 그들이 전하는 교훈은 매력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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