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18 The sons of Noah who went forth from the ark were fShem, Ham, and Japheth. (Ham was the father of Canaan.) 19 These three were the sons of Noah, and gfrom these the people of the whole earth were dispersed.2

20 Noah began to be a man of the soil, and he planted a vineyard.3 21 He drank of the wine and became drunk and lay uncovered in his tent. 22 And Ham, the father of Canaan, saw the nakedness of his father and told his two brothers outside. 23 Then Shem and Japheth took a garment, laid it on both their shoulders, and walked backward and covered the nakedness of their father. Their faces were turned backward, and they did not see their father’s nakedness. 24 When Noah awoke from his wine hand knew what his youngest son had done to him, 25 he said,

i“Cursed be Canaan;

ja servant of servants shall he be to his brothers.”

26 He also said,

“Blessed be the Lord, the God of Shem;

and let Canaan be his servant.

27  May God enlarge Japheth,4

and let him dwell in the tents of Shem,

and let Canaan be his servant.”

28 After the flood Noah lived 350 years. 29 All the days of Noah were 950 years, and he died.

f ch. 5:32; 10:1

g ch. 10:32

2 Or from these the whole earth was populated

3 Or Noah, a man of the soil, was the first to plant a vineyard

h [Hab. 2:15]

i Deut. 27:16

j Josh. 9:23; Judg. 1:28; 1 Kgs. 9:20, 21

4 Japheth sounds like the Hebrew for enlarge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 (Wheaton, IL: Crossway Bibles, 2016), 창 9:18–29.

 

 

18-19절)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 함,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의 아들들의 이름은 창세기 5:32에서 소개되어 창세기 6:10과 7:13에서 이름이 거론되지만 단 한 차례도 말과 행동의 주어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제 창세기 9:18 이하에서 이들은 제대로 무대에 등장하여 주인공 역할을 한다. 창세기 9:18의 문장의 주어는 노아의 세 아들들이다. 19절은 이들로부터 세상의 모든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말하며, 이것은 창세기 9:18 이하의 내용이 노아의 세 아들 시대에 기록되지 않고 그들의 후손들이 세상에 퍼진 후에 기록되었음을 보여 준다. 창세기 9:18의 둘째 문장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함을 주어로 내세워 그에게 초점을 맞추며 그가 가나안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밝힌다. 이것은 이어지는 기사의 주인공이 함이란 사실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이후의 창세기의 내용 전개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중요한 암시를 제공한다. 19절은 또한 창세기 9:1, 7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 노아의 후손들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20)

20) Victor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1–17, 320.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303.

 

20-23절) 노아는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얻어서 포도주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었다. 성경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술에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글 성경은 농사를 시작하여라고 말하지만 영어 성경은 노아가 땅이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라고 표현하고 히브리어는 ‘이휘 하아다마’라고 표현한다. 땅이 저주를 받아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 이후에 가인이 처음 땅을 경작하지만 살인죄를 저지르고 떠돌아다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땅은 아벨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된다. 창 5:29에서 라멕은 노아를 낳고 하나님이 저주한 땅에서 안위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는데 이것이 본문 속에서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 노아는 포도주를 마심으로 취하여 벌거벗었다. 이에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알렸고 함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다. 

포도주를 마시고 자기의 장막에서 벌거벗은 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노아는 자신의 자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모를 정도로 취해있었다는 것이다. 레 10장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성막에서 술을 마시고 활동하는 것을 금지한다. 물론 노아가 제사장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그가 홍수를 마치고 하나님께 제단을 드린 것을 생각한다면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장막과 성막이 동일한 곳으로 여긴다면 노아의 행동은 심각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함의 행동이다. 우리는 노아의 실수와 아담의 죄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워 했다. 노아는 술을 마시고 장막에서 벌거벗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던 것처럼 당대의 의인 노아도 중요한 실수를 범한다. 아담과 하와도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 이를 감추려고 했다. 반면에 함은 노아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형제들에게 알린다. 함의 행동에 대해서 성적으로 수치스러운 행동은 했다라고 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지 않고 이를 밝히 드러낸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선악과를 먹게하여 아담과 하와의 벗었음을 알게 한 이는 바로 뱀, 사탄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노아의 벗은 것을 알리는 함의 행동이 사탄과 연관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탄은 아담과 하와의 벗은 것을 알게함으로 부부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한 것처럼 노아의 벗은 것을 알게함으로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뱀과 뱀의 후손이 저주를 받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는 것처럼 노아의 벌거벗음을 알게한 함의 후손, 가나안은 저주를 받고 셈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고 있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노아의 벌거벗음을 옷으로 덮어주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몸을 가렸다가 이후에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그들에게 입혀주신 것과 같다. 이처럼 셈과 야벳의 행동은 하나님을 닮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를 통해서 셈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계보로 이어지게 된다. 

 

노아 홍수 이후 자손들이 번창하기 시작하였고, 노아는 농부가 되어(이쉬 하아다마אִישׁ הָאָדָמָה 창 2:5–6, 3:23, 4:2) 포도밭을 경작하기 시작한다. ‘이쉬 하아다마’(אישׁ הָאָדָמָה)는 창세기 1–11장에서 아주 중요한 표현이다. 창세기 2:5에서는 땅에 풀이 자라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창세기 3:17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창세기 3:23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추방하여 땅을 경작하게 한다. 창세기 4:2에서 가인은 처음으로 땅을 경작한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아벨을 살해한 죄로 인해 땅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며, 땅은 그에게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된다. 창세기 5:29에서 라멕은 노아를 낳고 그가 하나님이 저주한 땅에서의 수고와 고통으로부터 안위하여 주기를 소망하였는데, 노아는 홍수 이후에 마침내 ‘이쉬 하아다마’(אישׁ הָאָדָמָה, 농부)가 되어 포도원을 경작한다.21) 이처럼 노아가 농부가 된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카슈토는 노아를 ‘오베드 하아다마’(עוֹבֵד הָאֲדָמָה, 땅을 경작하는 자)라고 하지 않고 이쉬 하아다마(אישׁ הָאָדָמָה)라고 한 것은 노아를 땅의 주(master)로 여기는 것이고, 창세기 5:29의 라멕의 기대의 성취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22)

마태복음 24:38에서 예수님이 말한 것처럼 노아 홍수 이전에도 포도주를 마셨겠지만, 포도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창세기 9:21이 처음이다. 이 포도주와 관련하여 노아는 중요한 실수를 범하였다. 그의 실수는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에 벌거벗은 몸을 드러낸 것이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것만 두고 노아의 잘못을 논해서는 안되고 창세기 9:21의 내용 전체와 관련하여 그의 실수를 살펴야 한다. 그 이유는 구약 성경은 포도주에 취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포도주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기 때문이다(사 25:6).23) 하지만 노아가 자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모를 정도로 취해 있었던 것은 전혀 긍정적이지 못하다. 고대 근동의 종교에서는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이 종교 행사의 일부였다.24) 그러나 레위기 10장에 의하면 제사장은 술을 마시고 성막에서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25) 그 이유는 성막에서 거룩하고 속된 것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제사장은 성전에 들어갈 때 긴 옷을 입어야 했다. 하체가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심각한 일로 여겼다.26) 노아를 제사장들과 동일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자였고(창 8:20), 장막과 성막은 동일한 단어이다. 후대의 레위기의 제사장 규정에 비추어 평가한다면 노아의 행동은 심각한 실수라고 할 수 있다.

제2의 아담이었던 노아와 세 아들은 아담과 하와와 대조된다.27) 아담과 하와는 세 명의 아들이 있고, 그 중에 한 명을 통해 3:15의 약속이 이어지고 한 명은 저주 받았던 것처럼, 노아도 세 아들이 있고 그 중 한 명인 셈을 통해 약속이 이어지고 한 명은 저주를 받는다. 노아의 실수는 아담의 죄와 대비를 이룬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벗은 채 있었던 것처럼, 노아는 장막 안에 벗은 채 누워 있었다. 의로웠던 아담이 죄를 지었던 것처럼, 의로웠던 노아도 중요한 실수를 저지른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던 것처럼, 노아는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먹고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워 잔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서로서로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감추려고 하였다. 반면에 함은 노아의 벌거벗은 것을 보고 형제들에게 알린다. 함의 행동은 단순히 아버지의 벗은 몸을 희롱하는 것이 아니다.28) 아담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선악과를 먹게 하여 아담과 하와의 벗은 것을 알게 만든 일등 공신이 누구인가? 뱀 또는 사탄이다. 그렇다면 노아의 벗은 것을 알리는 함의 행동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 뱀과 사탄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없을까?29) 아담과 하와가 벗은 것을 앎으로 부부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어 서로 가리고 나무 밑에 숨어야 했던 것처럼, 함은 아버지의 벗은 것을 알림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파괴한다.30) 그리고 창세기 3:14에서 아담과 하와의 벌거벗은 것을 알게 만든 뱀과 뱀의 후손이 저주를 받고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된다. 마찬가지로 노아의 벌거벗은 것을 알게 만든 함과 함의 후손은 저주를 받고 셈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는다. 홍수 이전에 저주를 받은 것은 뱀과 가인이었으며, 홍수 이후에는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다. 함이 뱀의 행동을 하였다면 가나안은 함과 뱀의 행동을 따르는 뱀의 후손의 계통을 잇고 있다.31)

셈은 야벳과 함께 노아의 벗은 몸을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노아를 옷으로 덮어 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에덴 동산에서 일어났었다. 하나님은 벌거벗은 몸을 나뭇잎으로 가리고 에덴에서 쫓겨나던 아담의 몸을 가죽 옷을 만들어 직접 입혀 주었다(창 3:21). 유사하게 셈과 야벳은 노아의 벌거벗은 몸을 옷으로 가리워 주고 있다. 그렇다면 셈과 야벳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셈과 야벳은 옷으로 노아를 덮어 그의 수치를 가리워줌으로 하나님을 닮은 행동을 한 사람들이고, 뱀의 행동과 대조되는 행동을 하였다. 셈에게 주어진 축복에서 알 수 있듯이 뱀의 후손과 싸우게 될 여자의 후손의 계보가 셈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21)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415–416.

22) U. Cassuto, Genesis II, 159–160.

23) 시편104:15 “사람의마음을기쁘게하는포도주와사람의얼굴을윤택케하는기름과사람의마 음을힘있게하는양식을주셨도다.”

24) C. H. Gordon, “El, Father of Snm,” JNES 35 (1976): 261. 우가릿의 최고신 엘이 술에 취해 다른신에부축받는내용도있다.

“El sits in his mrzh–shrine, drinks wine to satiety, liquor to drunkenness. El goes to his house, proceeds to his court. Tkmn and Snm carry him.”

25) 레위기 10:9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 을면하라이는너희대대로영영한규례라그리하여야너희가거룩하고속된것을분별하며부정 하고정한것을분별하고또여호와가모세로명한모든규례를이스라엘자손에게가르치리라.”

26) 출애굽기20:26 “너는층계로내단에오르지말라네하체가그위에서드러날까함이니라.”

27) Kenneth A. Mathews, Genesis 1–11:26, 414–415.

28) 고대로부터주석가들은함이노아에게한행동의성격에대해관음증, 거세, 또는성관계였을것 으로 생각했다. 관음증으로 주장한 학자들은 Umberto Cassuto, Gordon P. Wenham, Victor P. Hamilton, Kenneth A. Matthews 등등이 있다. 거세에 대한 주장은 b. Sanh. 70a, Gen. Rab. 36.7 등등에 나타난다. Stephen Gero, “The Legend of the Fourth Son of Noah,” Harvard Theological Review 73 (1980): 321–330. Stephen Gero에의하면노아는홍수후에 넷째 아들을 얻고 싶었지만 함이 가나안을 시켜 노아를 거세시켰고, 이로 인해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하였다는 전통이 A.D. 4세기경부터 유대인들 중에 있었다고 한다. 성관계로 보는 견해는 Robert Gagnon, Anthony Phillips 등등이 있다. O. Palmer Robertson, “Current Critical Questions Concerning the Curse of Ham(Gen 9:20–27),” JETS 41–2 (1998): 177–188. 반면에 Frederick W. Bassett과 John Sietze Bergsma는 다른 사람의 ‘하체를 보다’ 는 성관계를 나타내고, 다른 사람의 아내나 딸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그 사람의 하체를 범하였다는 표현으 로관용어적으로사용되는것에근거하여(렘20:17)함이노아의하체를본것은노아의아내, 즉함이 자기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가졌고, 가나안은 그 결과로 태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Frederick W. Bassett, “Noah’s Nakedness and the Curse of Canaan: A Case of Incest?,” Vetus Testamentum 21–2 (1971): 232–237. John Sietze Bergsma, “Noah’s Nakedness and the Curse on Canaan (Genesis 9:20–27),”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24–1 (2005): 25–40.

29) Anthony J. Tomasino, “History Repeats itself: The Fall and Noah’s Drunkenness,” Vetus Testamentum 42–1 (1992): 128–130. 하박국 2:15 “이웃에게 술을 마시우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로 취케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것이라더러운욕이네영광을가리우리라.”

30) Derek Kidner, Genesis, 103–104.

31) Victor Hamilton, Genesis 1–17, 324. 해밀턴은 가나안의 저주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을 잘 정리하고있다. 첫째, 본문은원래함이었지만여호수아의가나안정복이후가나안으로읽게되었 다. 둘째, 원래두종류의본문전통이있었다. 하나는노아의아들이셈과함과야벳이고다른하 나에서노아의아들은셈과가나안과야벳이다. 편집자가편집과정에서실수를저질렀다. 셋째, 가나안이 실제적인 범죄자이거나 공범이었을 것이다. 넷째, 아버지가 받을 형벌을 자식에게 가 하는고대근동식눈에는눈이에는이의방식이다(lex talion).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304–307.

 

24-27절) 노아가 술이 깨어저 그의 둘째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일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낸 행동으로 인해서 노아는 함에게 저주를 선포한다. 결국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었다. 26절에서는 이제 구체적으로 셈의 종이 될 것을 말하고 있고 27절에서는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셔서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실 것임을 또한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될 것을 선포하신다. 

본문속에서 3번에 걸쳐서 가나안은 종이 될 것을 언급하고 있다. 25절은 종들의 종이 될 것을 선언하는데 이는 가장 천한 종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27절의 셈의 장막에 거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야벳으로 하여금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된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한글 성경은 전자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지만 히브리어늬 특성을 고려한다면 하나님께서 셈의 장막에 거하신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말하자면 가나안은 저주를 받게 되는데 셈은 축복을 받는 것이다. 그 축복의 내용은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 셈의 장막에 거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는 것이다. 

종이라는 히브리어는 ‘에베드’인데 이는 동사 ‘아바드’에서 나온 단어로 앞서 땅을 경작하는이라는 표현속에 사용되었다. 

 

노아의 축복과 저주에서 가장 강조가 되고 있는 것은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된다는 것이다. 종의 히브리어는 ‘에베드’(עֶבֶד)이며, 동사는 ‘아바드’(עָבַד)이다. ‘아바드’는 창세기 2–4장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창세기 2:5에서 땅의 식물이 자라지 않는 이유를 경작할 사람이 없었다고 할 때 ‘경작할’의 히브리어가 ‘아바드’이다. 그러나 이어서 3장에서는 선악과을 따먹은 결과로 징벌을 받은 인간이 그 결과로 땅을 ‘아바드’(עָבַד)하게 된다. 그리고 땅을 경작(עֹבֶד)하던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저주를 받은 가인에게 땅을 경작(עָבַד)해도 더 이상 땅의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에베드’와 ‘아바드’가 창세기 9:25–27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면서 가나안은 셈의 ‘에베드’(עֶבֶד, 종)가 된다고 한다. ‘종이 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주종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복과 지배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신명기 28:47–48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우상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저주를 내려 대적에게 정복당하고 그 결과로 노예로 섬기게 한다(cf. 예레미야 27장). 창세기 9:25–27도 가나안이 저주를 받고 종이 되는 것으로 보아 이 같은 차원에서 정복당하고 노예가 되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창세기 9:25–27의 축복과 저주는 창세기 3:15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창세기 3:15에서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지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여자의 후손이 뱀을 공격하여 그 머리를 발아래 두고 있는 것처럼, 셈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발 아래에 두어 지배하게 된다. 둘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도 있다. 창세기 3:15에서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지만, 창세기 9:25–27은 셈과 가나안의 이름을 밝힘으로 둘의 정체를 좀 더 분명하게 하고 있다.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310–311.

 

28-29절) 홍수후에 노아가 350년을 살았고 950세에 죽었다. 

 

이미 밝힌 것처럼, 창세기 5장에 있는 아담과 셋의 후손들의 계보는 하나의 패턴을 일관되게 따르고 있다.

  A. a가 x년에 b를 낳고,

  B. b를 낳은 후 y년 동안 자녀를 낳았으며

  C. z년을 향수하고 죽었다

노아의 경우 창세기 5:32에서 A에 해당되는 500세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는 말이 언급된 후 나머지 B와 C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홍수 기사가 대신 이어진다. 그러다가 창세기 9:28–29에서 마침내 B와 C에 해당되는 “홍수 이후 350년 살았고 향년 950세에 죽었더라”는 표현이 나온다. 노아의 패턴은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A를 창세기 5:32에 두고 B와 C를 창세기 9:28–29에 둠으로 홍수 기사 전체를 아담과 셋의 후손들의 계보 속으로 흡수 소화시켜버렸다.33)

                  A : 노아홍수 : B, C (노아의패턴)

창세기 9:8–29의 노아의 패턴이 창세기 5장의 족보의 패턴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하나 있다. 창세기 5장의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y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는 표현이 있는데 반해 노아는 ‘홍수 후에 350년을 지내었고’고 끝나 버린다. 즉 노아가 자녀를 낳았다는 말이 없다. 결국 노아의 자녀는 셈과 함과 야벳 뿐이며, 이들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민족이 생겨난다.

29절에서 노아는 950살을 살고 죽었다고 한다. 노아는 홍수 이전의 장수의 축복인 900살 이상을 산 마지막 사람이다. 노아를 끝으로 홍수 이후를 살아간 사람은 더 이상 이렇게 오래 살지 못하며, 인간의 수명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이제 인간은 메시아 시대에 있을 영생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이런 형태의 장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다.

33) Kenneth Mathews, Genesis 1–11:26, 425.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창세기1–11장 주석, 초판. (06593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 (반포동): 생명의 양식, 2016), 312–3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