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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I tell you that Christ cbecame a servant to the circumcised to show God’s truthfulness, in order dto confirm the promises given to the patriarchs, and in order ethat the Gentiles might glorify God for his mercy. As it is written, 
f“Therefore I will praise you among the Gentiles, 
and sing to your name.” 
10 And again it is said, 
g“Rejoice, O Gentiles, with his people.” 
11 And again, 
h“Praise the Lord, all you Gentiles, 
and let all the peoples extol him.” 
12 And again Isaiah says, 
ij“The root of Jesse will come, 
even he who arises to rule the Gentiles; 
kin him will the Gentiles hope.” 
13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ljoy and peace in believing, so that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you may abound in hope. 

cMatt. 15:24; John 1:11; [Heb. 3:1]; See Acts 3:26
d[ch. 4:16; 2 Cor. 1:20]
eSee ch. 3:29
fCited from 2 Sam. 22:50; Ps. 18:49
gCited from Deut. 32:43
hCited from Ps. 117:1
iCited from Isa. 11:10
jIsa. 11:1; [Rev. 5:5; 22:16]
kMatt. 12:21
l[ch. 5:1, 2; 14:17]
 The Holy Bible: English Standard Version(Wheaton: Standard Bible Society, 2016), 롬 15:8–13.


7-13절의 목적은 강한자와 약한자에 대한 내용을 끝맺으면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편지 전체를 하나로 그려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갈등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본문의 구조는 서로를 받으라고 명하고 나서(7절) 서로 받는 이유를 두가지로 설명한다. 첫빼는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를 받으셨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 둘 모두에게 확증하셨다. 그런다음 구약의 4본문의 인용을 통해서 연합의 기초가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는 것임을 보여주고나서 기쁨과 평강을 구하는 기도로 끝마친다. 
  • This section has two purposes—it concludes the section on the strong and the weak, but is also serves to draw the letter together as a whole, especially regarding Jew-Gentile relationships. Sass (1993) goes so far as to argue that this passage sums up the themes of the whole letter, including what God has done through Christ (vv. 8–9)*and the Pauline gospel (vv. 9–12). This certainly shows that the conflict between the Jewish and the Gentile factions in the Roman Church was one of the major purposes in his writing the letter. The organization is simple, with the command for mutual acceptance (v. 7) followed by two reasons for acceptance: Christ has accepted them all, and Christ has confirmed God’s covenant promises to both (vv. 7–8). Then four Old Testament citations show that the basis of unity is worshiping God together (vv. 9–12); the section concludes with a prayer for joy and peace (v. 13).
  • *15:8–9There are two options for the syntactical structure of these verses: (1) Paul is saying two parallel things, that Christ has become a servant of the Jews and that the Gentiles are glorifying God (so Cranfield 1979; Wilckens 1982); and (2) that Christ has become a servant of the Jews for two purposes, to confirm the covenant promises and to enable the Gentiles to glorify God (so Murray 1968; Barrett 1957; Morris 1988; Dunn 1988b; Moo 1996; Schreiner 1998). The grammar is quite difficult, but the latter fits the developing message better.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79–380.

앞선 14장에서 이미 서로를 받을 것을 명했는데 14장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기초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이 기초이다. 그래서 14장과는 2가지 다른점이 존재한다. 14장에서는 바울은 오직 강한자가를 언급했다면 여기서는 두 그룹을 모두 언급한다. 그리고 14장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음을 이야기했다면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두를 받으셨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수평적인 측면에서 수직적인 측면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내적인 관계가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서로를 받으라’는 이 명령은 믿는 자들의 교제에 있어서 신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행 2:44, 4:32)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성도들은 그들의 차이점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서 한 몸의 구성원으러서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의 기초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이 두 그룹을 그의 가족으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측은 서로 서로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그들의 관계안에서 이 현실을 반영해야만 한다. 게다가 앞서 6절의 주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으로 행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이끄시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들의 연합에 달려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앞에서 하나가 될때에야만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하나됨 자체가 하나님께대한 찬양일뿐만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만 한 입으로 그분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 Paul now addresses both groups and draws the challenge to a close by commanding them to accept one another,the very theme with which he began the section in 14:1. In 14:3 the basis of this is that “God has accepted” them, while here the basis is just as Christ accepted you.So there are two differences with chapter 14: there Paul addressed only the strong while here the command is for both groups, and there it was God receiving them while here it is Christ. This moves from the horizontal to the vertical dimension and continues the theme that the internal relationship of the people of God is vital for their relationship with God. The command to accept one anotheris at the heart of the New Testament doctrine of the fellowship of believers, as seen in Acts 2:44 (“all the believers were together and had everything in common”) and 4:32 (“all the believers were one in heart and mind”). For this to be possible, the saints must disregard their differences and accept one another(see v. 5 on “one another”) as members of the same body, the same family of God. The basis of this is that Christ has received both groups into his family, so therefore both sides are brothers and sisters of one another. They must now reflect this reality in their relationships with each other. Moreover, this again must be done to the glory of God, restating the theme of verse 6. Christ has glorified God in bringing us into his family, and the glory of God is at stake in our own unity.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80.


8-9절) 교회에 이방인들이 참여한것은 이미 선진들에게 주신 언약에 대한 성취이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특히 언약의 신실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9-12절) 바울은 여러 구약의 구절을 인용하며 유대인들과 함께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시키고 있다. 본문은 역사서, 율법서, 시가서, 선지서의 각각의 구절들의 인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구원역사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임을 보여준다. 
  • Paul cites verses from 2 Sam. 22:50 or Ps. 18:49; Deut. 32:43; Ps. 117:1; and Isa. 11:10, which emphasize the inclusion of the Gentilesinto the people of God along with the Jews. If the first reference is from 2 Sam. 22:50, citations are provided from the historical books, the law, the writings, and the prophets. The one people of God, both Jews and Gentiles, will praise God forever for his great mercy extended to them in Christ Jesus, showing that the worship of God is his ultimate aim in salvation history.
  •  Crossway Bibles, The ESV Study Bible(Wheaton, IL: Crossway Bibles, 2008), 2182.

본문은 11장의 내용과 연결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의 신실하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1:16에서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말했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매우 복잡한 계획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거절하셨고 유대인에게로 돌아서셨다. 이는 유대인들로 질투나게 해서 결과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진노의 그릇이 긍휼의 그릇이 되는 것이고 감람나무가 접붙임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그분의 자비를 찬양한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며 모두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역의 수신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안에서 그들은 하나이고 교회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을 이루어야 한다. 교회안에서 이 두 그룹의 하나됨은 그리스도가 이 둘의 종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 Yet at the same time there is a second purpose in the ongoing nature of God’s faithful work in Jesus, and this was also a significant emphasis in chapter 11, that the Gentiles may glorify God for his mercy.This is the second half of 1:16,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In 10:19–11:32 Paul presented a complex plan—God had rejected the Jew and turned to the Gentile in part to make the Jews jealous and eventually to bring them into the kingdom themselves. Here he summarizes the message. Those who originally were “objects of his wrath” have become “objects of his mercy” (9:22–23) and have been grafted into the olive tree (11:17) so that they might praise God for his mercy. Both Jew and Gentile are included in God’s plan of salvation, and both are the recipients of Christ’s salvific work. Therefore, they are one in God and Christ and must become one in heart and mind in the church. J. R. Wagner (1997:482–84) makes the point that in effect Christ has become “servant” of the Gentiles as well as of the Jews, and the unity of the two groups in the church is based on the fact that Christ is servant of both.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81–382.


앞서 6절과 같이 13절도 기도로 마쳐진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시겠다는 것이 중요한 열쇠이다. 이는 4절과 12절에서 강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기록된 성경의 약속이기도 하다.(4절) 다른 말로 이새의 뿌리 안에서 이방인들이 가진 그 소망은 바로 하나님께수 그들에게 주신 것이다. 게다가 평강과 희락, 기쁨은 내적인 조화와 기쁜 영으로 성령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에 주신 것이다14:17) 그래서 이 기도제목은 이미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그분을 신뢰하는 것에서 온다. 신뢰 혹은 믿음/신앙은 구원 사역의 측면에서 중요한 키이고 신비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게다가 신앙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을 이루실 것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강한자와 약한 자의 차이가 발생한다. 강한자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속에서 이를 좀더 깊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이라면 약한자는 이런 이해가 부족한 이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울은 강한자나 약한 자 모두에게 기쁨과 평강이 믿음안에서 충만케 될 것을 구하고 있다. 이는 오진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8장에서 성령의 역사는 교회와 개인안에 임재할 수 있는 존재로 보여진다. 그분의 부으심이 없다면 소망이나 평강, 기쁨에 도달할 수 없다. 그분과 함께 우리는 단지 소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소망으로 넘치는 것이다. 이는 소망의 잔이 흘러 넘치는 것을 의미한다. 5:15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선물이 흘러넘친 것처럼 그 결과 우리의 상호 구원의 소망은 우리 모두에게 넘쳐흐르고 우리에게 서로를 받을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준다. 
  • Just as Paul finished the first section of this chapter with a prayer-wish (v. 6), he now concludes the second part with another, asking that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v. 13). Most of the themes here summarize key emphases elsewhere. This is the God who brings people hope, stressed not only in verses 4 and 12 of this chapter but throughout the epistle (see on v. 4). In other words, the hope that the Gentiles have in the Root of Jesse (v. 12) is given them by God. Moreover, the peace and joyrefer to the internal harmony and joyous spirit that come to the church through the Holy Spirit in 14:17. So this prayer-wish is already in process of being fulfilled as God is at work in the community. The key is that this only comes as you trust him,referring to the active dependence on the power of God that alone makes all this possible. Trustor belief/faith is the key aspect in the work of salvation within (see especially 3:21–4:25) and means not just a mystical trust but a total reliance on God. In addition, “faith” in 14:1, 2, 22–23 is that belief in God that enables one to understand his covenant promises and appropriate the lifestyle he has for us. In this latter sense the weak and the strong had differing degrees of “faith,” but Paul wants the larger fact of faith in Christ to bring peace and joy into their different degrees of “faith.” This is only possible when they liv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and find his strength to forge a greater unity out of their differences. In chapter 8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s seen as the enabling presence in the church and the individual. Without his empowering, hope, peace and joy are beyond our reach. With him we do not just have hope but overflow with hope,meaning that our cup of hope is “full and running over.” In 5:15 the grace of God and his gift of salvation “overflow,” and this in a sense is the result of that; in our mutual salvation hope overflows to us all and gives us the spiritual strength to “accept one another” (v. 7).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84.  

14:1-15:13의 내용이 현대의 여러 상황과 문제에 얼마나 적실한가? Moo는 첫째로 구체적인 상황은 관련성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상황은 단지 신학적인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언약적인 상황을 적합하게 적용시키는 것에 대한 믿음의 차이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앞서 제시된 고기나 포도주의 금지, 특별한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한 문제들중에 안식일 준수만이 오늘날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원칙은 ‘아디아포라’ 즉 우리가 동의 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성경적으로 열려있는 현재의 문제들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세가지 포인트를 지적한다. 첫번째로 사실주의자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차원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약한자로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뮨제들을 실제로 죄로 여겼다. 같은 차원에서 오늘날 신자들의 양심은 그들에게 매우 실제적이고 그들의 양심을 어겨서는 안된다. 둘째로 더 강한 자들은 이러한 양심을 나눠서는 안된다 그들은 약한 자들을 이해해야하고 그들의 확신을 존중해야하며 다른 이들의 신앙을 무너뜨려서는 안되고 세워야한다. 그들은 약한 자들이 상처를 받지 않고 문제를 발생시키는 것을 줄일때에만 그들의 자유를 사용할수 있다. 세번째로 기본 원칙은 교회의 하나됨이다. 약한 자들은 강한 자들을 비난해서는 안되고 강한 자들은 약한 자들을 얕봐서도 안된다. 도리어 교회의 하나됨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개방성, 열린 관점(근본 교리가 침해받지 않는 한에서)에서 지켜져야한다. 성경의 내용을 상황화 하는데 두가지 방식이 있는데 구체적인 수준(음식벅, 포도주 성일) 혹은 일반적인 수준으로 그 원칙은 성경의 상황과 평행한 문제들에 적용되어야 한다. 앞서 논의한대로 일반적인 상황에 맞는 두가지 영역이 있는데 첫째는 비기본 교리에 해당하는 것과 실제 생활의 상황이 있다. 이 두 영역 모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우고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폭넓은 하나됨을 만들어야 한다. 
  • Moo (1996:881–83) has an excellent discussion on the applicability of 14:1–15:13 to current issues. He makes two points: First, the specifics have limited relevance, for the actual situation was not just a difference of theological opinion but limited faith on the part of the Jewish Christians to appropriate the new covenant situation. Therefore, of the three issues—prohibition of meat and of wine and the observance of special days—only the issue of Sabbath observance today is a real parallel. However, the principles do apply more broadly to current issues on matters of adiaphora, that is, issues that are open biblically and on which we can “agree to disagree.” He notes three points made by Paul: (1) as a realist, he knew that Christians actually live at different levels, and for the weak Jewish Christians these issues were indeed “sin” (14:14, 20); in the same way, the scruples of believers today are very real to them, and they should not violate their conscience. (2) Other believers are stronger and do not share these scruples; they must understand the weaker believers, respect their convictions and make sure to build up rather than tear down the others’ “faith.” They can practice their freedom whenever the “weaker” Christians are not there to be “harmed” (cf. 1 Cor 10:25–29) but curtail their practices whenever it will cause problems. (3) The “ ‘bottom line’ is the unity of the church” (Moo 1996:883). The weak are not to condemn the strong, and the strong are not to look down on the weak (14:10). Rather, the unity of the church must be preserved in all areas where it is a matter of openness (that is, where it does not impinge on a cardinal doctrine). There are two ways to contextualize biblical material, at the specific level (food laws, wine, holy days) or at the general level, in which the principles are applied to issues that parallel the biblical situation (see Osborne 1991:336–38). As discussed in this chapter, there are two areas that fit the general situation, first noncardinal doctrines (see on 14:3, 5, 9) and practical life situations (see on 14:13, 14). In both these areas Christians must learn to accept each other and forge a larger unity that recognizes and allows such differences.
  •  Grant R. Osborne, Romans, The IVP New Testament Commentary Series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4), 384–385.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 약한 자나 강한자 모두의 소망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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